[신쌤의논술돕는책] "디지털 노마드가 퓨전 만든다."
[신쌤의논술돕는책] "디지털 노마드가 퓨전 만든다."
  • 북데일리
  • 승인 2008.02.0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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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퓨전이란 말의 뜻은 ‘여럿이 녹아서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서 중학교 사회 교과서도 그 개념을 다룰 정도로 널리 알려진 용어가 됐다. 섞는다고 다 퓨전은 아니다. 하나로 합쳐 새로운 것을 만들었을 때 그것을 퓨전이라고 한다. 퓨전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창의성의 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뜨고 있는 통합과 퓨전엔 약간 차이가 있다. 통합은 뭔가를 새로 만들어낸다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교과의 지식들을 고루 활용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상상력이나 창의력과 궁합이 맞는 것은 퓨전이지 통합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통합 논술이 기존의 객관식 시험에서 측정하기 어려운 창의성을 측정하는 새로운 유형의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에 가깝다.

퓨전은 고등학교보다는 대학이 제 격이다. 대학에서는 교양 과정으로 한 주제를 놓고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과목이 개설돼 있다. 대표적인 학교가 이화여대다. 통섭의 대가 최재천 교수를 스카우트한 이래 학부 과정에서 주제통합형 교양 수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 책 <미래를 만드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상상력>(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6)의 저자 조윤경은 이 학교의 주제통합형 교양 전임강사로 재직 중인 소장 학자다.

저자가 미래 사회의 키워드요, 미래 사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퓨전’이다. 앞에서 퓨전은 섞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과 무엇의 퓨전일까? 저자는 글자와 시각 이미지가 상호 침투하는 시대로 정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상순 시인의 ‘녹색의 소년’이란 작품은 그림과 글을 결합한 회화시다. 그림과 글자가 뒤섞인 새로운 형태의 매체를 픽토그램이라고 하는데 현대 광고에서 단골로 쓰이고 있다.

퓨전은 어디서 이루어지는 걸까? 대중문화 영역에서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저자는 비보이의 춤과 연극의 만남, 담벼락 낙서가 전시된 박물관 등을 퓨전 혁명의 진원지로 들고 있다. 실제 역사에 소설이 섞인 팩션의 유행은 어떨까? 역시 퓨전 현상의 한 예이다. 물론 기존 텍스트를 창의적으로 비튼 패러디 역시 퓨전이다.

퓨전 현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유목민적 상상력 덕분이었다. 퓨전 현상을 이끌고 있는 주체는 디지털 유목민들이다. 저자는 정보화를 앞세운 세계화가 이들의 위상을 끌어올렸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창의력과 정보력 덕분에 적게 일하면서도 풍요를 누릴 수 있다. 일을 줄인 대신 이들은 창조하고, 즐기고, 움직이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이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기준은 ‘내가 좋아서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일 뿐이다. 이들은 컬러리스트, 게임 아트디렉터, 그래피티 아티스트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만든 창의적인 작품들과 학생들이 직접 시도한 디지털 노마드들과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고등학생이 읽기에 그렇게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출제가 잦아지고 있는 세계화와 대중문화 논제에 배경지식으로 써먹을 수 있는 글감들이 풍성하다.

디지털 노마드와 퓨전에 대해 맹목적인 찬양을 보내기보다는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 보자. 창의력이 됐든 자본이 됐든 이들이 결과적으로 누리는 행복은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니겠는가? 결국 양극화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로 살아남은 자들에게 쏟아지는 시샘과 비판을 이들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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