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 나의 파멸
당신의 사랑, 나의 파멸
  • 북데일리
  • 승인 2008.01.2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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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깊이의 문제일까 방향의 문제일까. 여기 사랑의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사랑의 방향을 생각하는 한 여자와의 충돌이 있다. 한강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 (창비. 2007)를 읽으며 우리안의 꿈틀대는 동물성과 고요히 흔들리는 식물성을 동시에 느낀다.

<채식주의자>에 실린 세 편의 소설들은 문학계간지에 실렸던 독립된 중편들이면서, 동시에 한 묶음의 장편소설 이기도하다. 세 편 각각 화자가 바뀌면서 주인공의 파멸과정을 그리고 있어, 한 사람을 향한 여러 이해방식들을 볼 수 있다.

식물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 영혜와 그것을 돌이키려는 주위사람들 간의 밀고 당김을 통해, 사랑의 깊이와 방향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1. 너는 너무나 달라 - 채식주의자

첫 번째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는 주인공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된 배경과, 그것이 남편과 주위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준다. 남편은 영혜의 생활력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랑했다. 그녀는 어느 날 꿈을 꾸고 난 뒤 육식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남편은 영혜의 육식거부를 식구들에게 알리고, 급기야 친정식구들은 강제로 영혜의 입에 고기를 구겨 넣는다. 영혜는 그날 이후 (식구들이 보기에) 환자가 된다.

인간이란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깊이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아주 작은 차이를 긍정할 줄 모른다. 사랑은 마음의 경사짐이 아니라, 존재의 인정이다. 인간이 사랑의 참된 의미를 가장 망각하기 쉬운 환경이, 상식과 평범함의 세계 속에 거할 때이다. 상식과 평범함은 수의 논리이며, 다수는 언제나 강압적 진리를 손에 쥐고 있다. 영혜는 이 다수의 진리와 맞서야했고, 그녀의 식물성은 동물들의 이빨에 찢겨졌다. 그녀는 희미하게 말한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2. 탐미의 세계에서 우리 만나자 - 몽고반점

<몽고반점>에서는 형부가 화자가 되어 남편도 떠나버린 영혜의 고립된 영역으로 들어선다. 영혜의 몸에는 몽고반점이 남아있다. 그것은 생명의 출발점에서 생성된 식물성 피부이며, 죽을 때 까지 동물일 수 없는 영혜의 몸을 상징한다. 자신의 예술세계에 지쳐버린 형부에게 그녀의 몽고반점은 탐미의 대상으로 다가왔고, 점차 탐욕으로 변해간다.

형부는 영혜의 식물성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예술로 꽃피울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연민과 탐욕이 뒤섞여버린 작품은 파멸의 화면으로 정지된다. 형부가 몽고반점에 집착한 이유는 푸른 생명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욕망을 실현함으로써 사랑의 지옥을 탈출하려는 자신의 동물성을 극복하지 못하였기에, 영혜의 푸른 영역에 뿌리내릴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파멸의 어둠 속으로 더욱 밀어 넣기만 하고 만다.

3. 그래도 조금만 방향을 틀어봐 - 나무 불꽃

사람의 세계이지만 식물을 인정하지 않는 곳, 즉 동물의 세계에서 밀려난 영혜가 갈 곳은 식물의 세계밖에 없었다. 이제 영혜 곁에 마지막으로 남은 언니가, 저 건너편 세계로 건너 가버린 영혜의 모습을 <나무 불꽃>에서 이야기 한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가족과 사회에 순응하는 인물이었다. 동생 영혜를 향한 깊은 사랑은 있으나, 자신을 지배해왔던 가족과 사회의 영역에 여전히 발을 딛고서 안타까이 영혜를 부른다. 언니는 영혜처럼 식물의 세계로 나아가는 중간지점에 서서 허무로 타오르는 존재의 불꽃을 잠시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하여 영혜를 이해할 듯도 말 듯도 하다. 그러나 언니 역시 다른 이들처럼 영혜더러 조금만 방향을 틀어보라고 요청한다. 영혜가 보기엔 가족들의 강요에서 언니의 요청으로 강도가 바뀌었을 뿐이다.

영혜가 디딘 세계는 그토록 이해하기도 건너가기도 힘든 세계일까. 인간에 대한 이해를, 영혜가 그랬던 것처럼 한그루 나무를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해보면 어떨까. 한그루의 나무는 인간존재가 복원해야할 에덴의 투영물인지 모른다.

모두들 영혜를 향한 사랑의 깊이는 있었어도 방향성은 영혜와 일치하지 못했다. 상식이나 평범함으로 돌려놓는 것을 사랑이라고 영혜의 모든 가족들은 생각했다. 억지로, 강제로, 그리하여 폭력적으로. 그들의 사랑은 영혜의 파멸을 불러왔다. 파멸에 이르기까지 무수히도 스쳐가는, 사랑할 기회에 대해 나는 생각해본다. 회복시키거나 건져내거나 하는 기회가 아닌,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할 기회에 대해.

사람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 듯 미세한 결을 가진 한강의 언어. 그 위안의 언어를 마시며 고독과 상처투성이 우리 몸은 싱싱하게 살아나는 식물이 된다.

(일러스트 - jeje)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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