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아의 방주` 들고 나온 베르나르
`현대판 노아의 방주` 들고 나온 베르나르
  • 북데일리
  • 승인 2007.07.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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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개미의 세계와 죽음을 통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최신작 <파피용>(열린책들. 2007년)을 내놓았다. 인간의 뇌, 사후세계, 인류의 기원 이라는 보통의 소설에서 생각하기 힘든 소재로 전 세계 독자들의 지적 흥분을 가져온 그가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펼쳐놓았을까.

베르나르는 이번 소설에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인류가 너무나 타락해서 도저히 회생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인지, 아니면 가까운 미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 속에 세상에 대한 묘사는 지옥 그 자체이다.

베르베르 소설의 특별한 점이라면 과학 전문 기자라는 이력을 통해 발휘되는 첨단 과학 지식과 성서로 대표되는 신화적 상상력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시키는 천재적 감성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생동감 있고 살아 숨 쉬는 소설 속 인물들의 묘사를 빼놓을 수 없다.

항성여행에 대한 프로젝트를 심사하던 `이브`는 비오는 날 운전하던 중, 길을 건너던 여자를 차로 치게 되면서 그 동안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부러울 것 없는 억만장자 `가브리엘`은 병원에서 폐암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잘 나가던 요트 세계 챔피언 `엘리자베타`는 비오는 날 차에 치어 하반신 불구가 되면서 살아갈 의욕을 잃는다. 이렇듯 소설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3사람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베르나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가브리엘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나 있다.

“<마지막 희망 Dernier Espoir>이란 뜻이오. 나는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우주여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오.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소. 요즘 뉴스들을 봤소? 모두 다 엉망진창이오. 이 지구는 우리의 요람인데, 우리가 다 파괴해 버리고 말았소. 이제는 지구를 치유할 수도, 예전과 같은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도 없소. 현재 마지막 희망은……탈출이라고 나는 믿고 있소.”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144,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32KM 크기를 갖는 초대형 우주범선을 제조한다. 그리고 시속 250만KM 의 속도로 1,000년간의 항성여행을 시도한다. 소설 속 상황이지만 엄청난 스케일의 상상력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엄격한 심사조건을 통해 비 폭력성,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성, 성공을 바라는 동기가 강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144,000명은 외견상 완벽해 보인다. 사유재산, 돈, 결혼제도와 같은 예전 관습들을 없애고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 순수함은 꿈에서나 가능할 듯 보이는 유토피아의 실현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너무나 예의바르고 온순한 제빵 기술자였다.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을까.

작가는 “우리 인간에게 <자기 제한적인> 유전자가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 때문인지도 몰라. 우린 스스로 자연을 완전히 정복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우리보다 앞서 멸종한 다른 종들과 비교하면 특별히 그렇다고 할 수도 없어. 자연은 질병, 유성, 기후 변화를 동원하여 그들의 멸종을 유도했지. 그러니까 우리 인간에게, 우리들 유전자 속에 입력된 시나리오에도 이미 종말이 예정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거야” 라는 이브의 말을 통해 몇 백만 년 동안 살아오면서 유전자에 새겨진 인류라는 종(種)의 폭력성이 단시간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수십 세대를 거치면서 잘못된 습관을 고쳐나가야 하다고 이야기한다.

파피용에서 1251년간 여행하면서 수많은 전쟁을 하면서 결국에는 6명만이 생존한다. 남자 5명, 여자 1명. 2명이 탈 수 있는 소형 우주선에 타기 위해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고른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첨단 과학이 아니라 한 여자의 선택이라는 것에서 작가의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다.

베르베르는 과학과 신화가 하나의 사실을 각자 다른 관점으로 풀이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 듯 하다. 이것이 잘 드러난 `아드리앵`과 `에야`의 대화를 살펴보자.

“그래, 나하고 다른 다섯 사람들. 그러데 여자는 딱 한 명이었어. 엘리트라는 이름을 가진.”(아드리앵) “릴리스(신화속에서 성서의 이브와 비교되는 인물, 또한 아담의 첫 번째 부인이었다는 가설도 있음)?” (에야)

“내 말을 들으면 아마 넌 믿지 못할 거야……. 넌 내 많은 뼈들 중 하나로부터, 그러니까 갈비뼈로부터 태어났어.”(아드리앵) “그럼 아담의 갈비뼈로 날 만들었다는 거야?”(에야)

작가는 이와 같은 대화에서 현재의 지구와 미래의 우주여행으로 발견하게 될 행성이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과거에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신화가 옛날 사람들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무시하시만 아득히 먼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항성 간 여행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일수도 있다고 가정한다.

베르베르의 소설은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전쟁, 기아, 환경파괴, 핵의 위협, 빈부격차, 도덕적 타락.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이런 것들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까.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 라는 책의 마지막 구절은 인간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알려준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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