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명문장] 실패 얼굴에는 위엄이 있다
[책속 명문장] 실패 얼굴에는 위엄이 있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4.10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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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산문집 <말하다>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소설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순한 재미를 위해 수백페이지가 넘는 책을 붙잡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독자는 소설을 통해 인생을 배우기를 원한다.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말하다>(문학동네.2015)에서 들려주는 소설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한 권의 소설이 얼마나 든든한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은 우리를 실패와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실패는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실패를 피할 수 있다 해도 죽음이라는 가장 유명한 실패는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소설은 철저하게 실패와 실패자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리고 많은 소설이 죽음으로 끝나거나 내용 중에 죽음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보며,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 실패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아울러 소설은 실패가 때로는 성공보다 더 위엄 있는 사건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뼈만 끌고 포구로 돌아왔지만 소설을 읽은 우리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그 물고기와 싸웠고, 그 물고기가 숨을 거둔 후에는 그 물고기의 살을 뜯어먹으려는 상어와 도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의 실패에는 위엄이 있습니다. 소설들은 그런 실패로 가득합니다.

 늙은 돈키호테는 평생 읽어온 기사도 소설의 세계를 동경해 길을 떠나지만 비웃음을 살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조차도 우리는 미소를 띠며 읽게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모두 환상을 좇아 일상을 탈출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돈키호테는 그걸 좀 과장되게 보여준 것뿐입니다. 그를 보면서 위엄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인간 존재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158~159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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