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미완의 작품이다
우리는 모두 미완의 작품이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6.06 0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퓰리처상 애너 퀸들런의 책

 [북데일리] 삶은 유한하다. 그러기 때문에 애착을 갖는다. 경험과 실수를 통해 배우고 익힌다. 어떻게든 잘 살려고 노력한다. 잘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지도 모른 채 말이다. 중대한 선택 앞에서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고, 오직 나에게만 힘들고 속상한 일들이 쏟아지는 것만 같다. 그럴 때 앞서 경험한 인생 선배의 한 마디는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애너 퀸들런의 <이제야, 비로소 인생이 다정해지기 시작했다>(오후세시. 2014)는 그런 책이다.

 딸, 아내, 어머니, 여자로서의 살아온 자신의 삶을 엄마나 이모의 입장에서 들려준다. 예나 지금이나 직장과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위로한다. 동시에 자신과 다르게 결혼과 동시에 제도사였던 직장을 포기한 어머니를 안타까워한다. 양성평등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남성보다 힘든 여성들의 고충을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는다.

 기자로, 작가로,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저자의 삶이 불행한 건 아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만들기 위해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조금만 힘들어도 참지 못하고 투정을 부리면 과거의 당신들은 달랐다며 훈계를 늘어놓을 땐 듣지 싫었지만 인정한다. 한데, 이제는 그 입장을 이해할 것 같다. 저자가 조바심 내는 20대를 바라보며 갖는 마음처럼 말이다. 좀 더 빨리 성공하기를 바라며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녀도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완의 작품이다. 나만 해도 쉰 살에는 저지르지 않았고 알지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지난 10년 동안 모두 이루어졌다. 앞으로 몇 십 년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분명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꼼꼼한 계획 아래 정중하게 작성한 초대장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을 적은 리스트 한 귀퉁이에 끼적인 낙서 같은 행복한 우연을 통해 찾아온다.’ 137쪽

 달콤한 커피 한 잔, 혹은 시원한 맥주를 앞에 두고 맛있는 수다를 나누는 것처럼 정겨운 책이다. 교훈이나 훈계가 아닌 자연스럽게 삶에 대해 공유한다는 느낌이다. 그건 딸, 조카, 손자들에게 들려주듯 진심이 담겼기 때문이다. 열여덟 벌의 검은 바지와 열한 켤레 까만 구두가 말해주는 스타일을 고집하고, 매일매일 친구와 전화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이어가며, 예순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이야기는 신나고 유쾌하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목격하고 싶다. 미래를 목격하다가 과거가 도마에 오르면 조금은 수다쟁이가 되어 손자들에게 흑백 TV와 안전벨트가 없는 자동차에 대해 들려주고 싶다. 그러며 녀석들은 어렸을 때는 얼굴을 환히 밝히다가 사춘기가 되면 건성으로 듣겠지. 그렇게 바뀌어갈 녀석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녀석들이 지겨워할 때까지 기억에 남은 추억들을 들려주고 싶다.’ 271쪽

 앞으로 살아가야 할 노년의 삶에 작가의 바람과 기대는 괜히 신이 난다. 그러니까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며 점점 죽음과 맞닿는 시간을 사는 우리 부모님 세대도 마찬가지다. 20, 30대 여성에게는 일과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을, 그 이후의 세대에게는 남은 인생의 진정한 행복에 대한 조언은 들을 수 있는 즐겁고 유익한 에세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