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경쾌하게 풀어낸 성장소설
아픔을 경쾌하게 풀어낸 성장소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4.09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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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이만큼 가까이>

 [북데일리] 하나의 시간이 지나야 다른 시간이 온다.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어떤 이는 그 시간에 갇혀버리기도 한다. 지울 수 없는 상처 때문이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그렇다.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이만큼 가까이>(창비. 2014)속 화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파주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함께 지냈던 ‘나’와 친구들의 이야기다. ‘나’와 주연(주연의 오빠 주완), 송이, 수미, 찬겸, 민웅은 버스 통학으로 학교에 다닌다. 국숫집의 딸 ‘나’, 남동생과 외가에 얹혀사는 수미, 인도에서 살다가 파주로 온 주연과 학교에 다니지 않는 주완, 아파트에 살고 있는 모범생 찬겸, 패션감각이 뛰어나고 손재주가 좋은 송이, 사촌형들과 어울렸던 민웅. 같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여섯 명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한다.

 학창시절과 어른이 된 현재의 삶을 교차하며 들려준다. 그 연결점엔 ‘나’의 DSLR 영상이 있다. 십대를 보내며 경험했을 모든 감정과 고민 이야기가 나온다고 봐도 좋다.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자애와 사귄 민웅, 그런 민웅을 좋아하는 수미, 그들을 지켜보는 나머지 아이들도 함께 사랑하고 아파한다.

 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주연은 한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고 주완은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우연하게 주완과 가까워진 ‘나’는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동네를 산책한다. 첫사랑의 떨림은 영원하지 않았다. 어이없는 총기 사고로 주완이 죽고 ‘나’에게 속한 십대의 시간은 멈추고 만다. 누구나 지나온 시간이지만 결코 같다고 할 수 없는 학창시절의 풍경들이다.

  ‘정말로 놀라운 건, 종종 내 친구들과 똑같은 얼굴의 아이들과 마주친다는 것이다. 친척도 아니도 아무도 아니다. 아무 관계도 없이 그렇게나 똑같은 얼굴로 태어난다. 누군가 이 세계에 우리와 똑같은 얼굴들을 계속 채워넣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두려운 것은 그 똑같은 얼굴 뒤의 거의 다르지 않을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유일하지도 않으며 소중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대체된다.’ (105쪽)

 하나의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은 저마다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다. 치과의사가 된 찬겸, 파주를 떠나지 못하고 출판사에 근무하는 주연, 조경 회사에 취직한 민웅, 승무원에서 뉴욕에서 알아주는 뜨개질 여왕이 된 송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지낸다. 주완이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 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나’도 현재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무에게도 꺼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는 삶이 존재한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모여서 함께 망가지고 고장나고 그러다 한사람씩 사라질 것을 예감했으나 이른 포기의 달콤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어서 그리 무거워지진 않았다. 열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하나씩, 운이 좋으면 길게 머물 거고 아니라면 순식간에 사라졌을 것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담담하게 치킨을 먹고 생일 파티를 하고 경조사를 챙겼다.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살아졌다. 그사이에서 다시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할 것이었다.’ (192쪽)

 정세랑의 소설이 보통의 성장소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건 맑고 경쾌한 문장과 파주의 이미지다. 실로폰의 음색으로 들려주는 첫사랑의 죽음, 방황, 분노, 절망, 슬픔. 파주. 현재는 거대한 출판도시가 되었지만 그 시절의 파주는 세기말과 십대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이들이 파주를 떠올릴 것이다. 여전히 어떤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소설을 권한다. 46개의 DSLR 영상이 끝나는 순간, 다른 시간의 삶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이만큼 가까이 말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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