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달콤한 차 같은 소설
따뜻하고 달콤한 차 같은 소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4.09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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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도토리 자매』

[북데일리] <도토리 자매>(민음사. 2014)는 치유의 작가로 잘 알려진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이다. 소설은 어떤 내용이든 편지를 보내면 답장을 해주는 ‘도토리 자매’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언니 돈코와 동생 구리코(일본어로 ‘돈구리’는 ‘도토리’를 의미) 이야기다.

 자매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친척들과 생활한다. 삼촌과 숙모와 사는 건 행복했지만 삼촌의 죽음으로 이모 집으로 옮겨온 자매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고등학생 돈코는 동생을 두고 집을 나가고 남겨진 구리코는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병이 난다. 연락이 닿은 돈코는 구리코를 데리고 친할아버지 집으로 간다. 몸이 아프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할아버지의 유산과 돈코가 글을 쓰며 번 돈으로 생활한다.

 힘겨운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자매는 서로의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 달랐다. 언니는 쉬지 않고 연애를 하며 외향적인 반면 동생은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요리를 한다. 겉으로 보면 무척 평화로운 삶이다. 하지만 돈코와 구리코는 항상 불안을 곁에 두고 있었다. 돈코는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구리코는 세상과의 교류가 그러했다. 도토리 자매의 일이 둘을 묶어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자매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개인적인 이것저것의 문제라고 믿고 있지만, 실은 그 한없는 광활함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이어져 있어 오히려 불안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옆에 닿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와중에도 우리에게 메일을 쓴다. 이렇게 광활한 우주에 작은 돌 하나를 던져도, 그 파문이 어딘가에는 반드시 생긴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것으로든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15쪽)

 가만히 누군가가 보낸 편지를 생각한다. 피로한 일상과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편지로 쓰고 읽는 것으로도 그것들의 무게가 줄어든다는 걸 말이다. 남자친구와 떠난 서울 여행에서 돈코가 구리코에게 보낸 편지에서 평안과 충만함을 느껴지는 이유도 그렇다. 그래서 소설이 아닌 ‘도토리 자매’의 답장을 받은 기분이다.

 ‘살아 있고, 머리 위에 지붕이 있고, 방은 난방으로 따뜻하고,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맛있는 음식이 익어 가는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그래서 기쁘다, 얼마나 단순한지. 특별한 것은 하나도 바라지 않는다. 이런 마음을 깨우친 것만 해도 좋았다.’ (51, 52쪽)

 우리 생에 슬픔과 불안의 존재를 모두 제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안도 반으로 나누면 줄어들지 않을까? 나누고 나누다 보면 줄어들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따뜻하고 달콤한 차를 떠올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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