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자극하는 서정 미스터리
감성 자극하는 서정 미스터리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4.03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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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흩날리는 밤>...봄의 찬연한 소설

[북데일리] <추천> 아릿한 첫사랑의 감성을 만날 것 같은 첫인상과 달리 책은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은 맥주바 ‘가나리야’ 를 운영하는 마스터 구도를 중심으로 단골손님들의 사연을 들려주는 연작 소설집이다. ‘가나리야’ 는 퇴근 후 맥주 한 잔과 맛있는 안주를 곁들여 수다로 지친 하루의 피곤을 푸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다섯 편의 소설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우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표제작 <벚꽃 흩날리는 밤>은 형사인 간자키가 죽은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편지를 읽고 ‘가나리야’ 을 찾은 이야기다. 아내가 그곳에 간자키를 위한 마지막 선물을 부탁해 두었다는 것이다. 간자키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그곳의 분위기를 살피며 구도가 권하는 음식을 먹는다. 분홍빛 녹차밥을 먹으며 아내가 해주었던 녹색 녹차밥을 생각한다. 그러다 연두색 꽃이 피는 벚나무의 이름이 교이코라는 것을 떠올린다. 5년 전에 간자키가 담당한 사건 피의자와 관계된 인물이었던 유리에를 감시했던 사연을 구도에게 이야기한다. 교이코가 필 무렵 한 공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녀에게 연정을 품은 것이다.

 ‘교이코는 왕벚나무가 다 지고 나서 꽃을 피우는 품종이었고, 꽃잎이 연두색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무엇보다 다른 벚나무의 꽃이 모두 떨어지고 나면 공원 안이 아주 훤해진다. 쇼부 호수의 건너편에서도 나무 아래 서성이는 유리에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터였다.’ (벚꽃 흩날리는 밤, 81쪽)

 간자키는 그 뒤에도 봄마다 교이코 꽃이 필 때 그 공원에서 연두색 원피스를 입은 유리에를 지켜봤다고 고백한다. 어느 해 그녀가 종적을 감출 때가지 말이다. 아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가나리야’ 까지 와서 녹차밥을 먹게 만들었을까. 작가 ‘기타모리 고’는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묘사로 죽은 아내와 사라진 유리에게 대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이성적 판단을 요구하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 미스터리다.

 섬뜩하거니 기괴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를 하는 히우라가 고향 단골 요릿집의 15주년 행사 초대장을 받는<15주년>도 마찬가지다. 파티에서 히우라는 요릿집 딸인 유미에게 15년 전 고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의 범인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받는다. 그건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딸 유미를 지켜줄 사람으로 히우라를 시험한 것이다. 그 외의 단편도 마찬가지다. ‘가나리야’ 에 들러 구도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걱정을 털어놓을 뿐이다.

 ‘자신이 발이 닿는 범위 내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안도감을 안겨 준다. 혹은 맥주와 술안주, 그 밖에 여러 가지 요소가 정신을 맑아지게 하는 장소. 그곳이 바로 ‘가나리야’ 다.’ (15주년, 13쪽>

 특별한 점은 맥주바 ‘가나리야’ 의 마스터 구도의 역할이다. 정성을 담은 음식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주면서 묵묵히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건을 분석하고 해결한다. 마치 그곳에 오면 모든 걸 구도에게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면 맞을까. 이 단편집이 감성을 자극하는 건 음식 때문이기도 하다. 단편마다 등장하는 음식은 마치 묘약처럼 느껴진다.

 ‘보기에는 평범한 두부튀김이었지만 사등분 한 두부의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간 순간, 전에는 느껴 본 적 없는 맛이 혀 전체로 퍼져 갔다. 살짝 매운맛이 돌면서 비릿한 바다 내음이 혀를 기분 좋게 자극한다. 맥주로 입을 헹구고 나자 혀끝에는 콩의 희미한 단맛이 남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남은 세 조각의 두부가 제각각 다른 맛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두부튀김에 뿌린 장국 소스부터 뭔가 다른 것 같았다.’ (벚꽃 흩날리는 밤, 61쪽)

 피곤한 일상과 걱정을 뒤로하고 편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치유의 공간, ‘가나리야’를 상상한다. 제목처럼 벚꽃이 흩날리는 밤에 맥주 한 캔을 곁에 두고 읽어도 좋겠다. 황홀한 벚꽃과 눈부신 봄을 음미할 수 있는 찬연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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