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에서는 구리 맛이 났다. 한기가 들고 졸리며 심하게 목이 말랐다. 엄마가 떠올랐다. 아버지도. 숲 속에 서 있는 신디 워커도. 벽에 기대선 남자는 어느새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래리를 노려 보는 가면의 구멍 속에서 눈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이상하게도 래리는 그를 용서하고 싶어졌다. 괴물은 모두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21~22쪽
소설은 미시시피의 샤봇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래리 오트와 사일러스 존스에게 일어난 일들을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여 들려준다. 래리는 소심한 성격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다. 등교길에 아버지가 차에 태워준 사일러스 모자를 만난다. 엄마는 그들을 경멸했지만 래리는 사일러스와 친구가 된다. 어른들의 관계는 두 소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른이 된 그들은 서로를 외면한다. 둘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래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간 이웃이자 고교 동창인 신디 워커가 집으로 돌오지 않는 사건인 발생한 것이다.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모두 래리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그의 말은 진실이었지만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마저도.
끝내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래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군입대였다. 군대에서 돌아온 후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흑인 소년 사일러스에게는 모든 걸 가진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래리의 삶은 20여 년이 지났지만 유령과 같았다. 그는 여전히 괴물 래리로 불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대신 정비소를 맡았지만 손님은 없었고 치매에 걸린 엄마는 요양원에 있다. 단순한 하루 일과는 어제와 완벽하게 같았다. 그러다 러더포드 목재회사의 딸 여대생 티나 러더포드가 실종되자 모두 그를 용의자로 의심하고 래리는 총을 맞은 채 발견된다.
정말 래리는 두 사건의 범인이었던 것일까? 진실을 찾는 몫은 독자이자 사일러스의 것이다. 평생을 샤봇을 떠난 래리와 달리 그는 마을을 떠나 생활하다 경찰이 되어 돌아온다. 사일러스는 티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지목한 래리가 아닌 진짜 범인을 잡는다. 그리고 어린 시절 래리의 엄마가 자신을 왜 그토록 무시했는지 알게 된다. 동료이자 연인인 엔지에게 20여 년 전 래리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신디 사건의 진실도 털어놓는다.
작가 톰 프랭클린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라 그런지 주변 풍경과 인물 내면의 묘사가 섬세하고 탁월하다.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처럼 보이지만 소년이었던 두 남자 래리 오트와 사일러스 존스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다. 정말 지독한 성장통이라 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보여줄 수 없었던 삶이다. 아니, 단 한 사람도 두 소년을 이해하고 품어주지 않았다. 그러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래리가 요양원에 있는 엄마 대신 닭에게 모이를 주며 말을 거는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거대한 비밀과 슬픔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풀어낸 근사한 소설이다.
‘지나간 날들 위로 한 해 한 해가 새로이 쌓여가지만, 그 옛날은 아직도 그 안에 있다. 나무의 가장 처음에 생겨난 가장 단단한 나이테처럼, 험한 날씨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가장 깊은 곳 어둠 속에 숨어 있다. 그러나 톱이 비명을 지르며 파고 들어오면 나무는 쓰러지고 나이테는 태양에 그대로 드러나며, 수액이 반짝이고 그루터기는 온 세상이 다 볼 수 있게 모습을 드러낸다.’ (439~4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