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생은 왜 이리 가여운가
우리네 생은 왜 이리 가여운가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3.27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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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지원 소설 선집 <폭설 외>

 [북데일리] 평범과 대척점에 있는 일탈은 모두의 꿈이다. 반대로 일탈이 일상인 삶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그 삶을 갈망하고 부러워한다. 고 김지원 소설 선집 <폭설 외>(작가정신. 2014)에 등장하는 이들이 그렇다. 그러니까 타인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이들은 다른 삶을 흠모하는 것이다. 좀 더 과감한 삶과 사랑, 도덕과 윤리에서 벗어난 삶을 말이다. 그것은 한국이 아닌 뉴욕이라는 공간이기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폭설>엔 딸만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어머니와 사는 진주가 등장한다. 유학생 시절 꿈과 사랑을 나눴던 정섭과 결혼을 했지만 점차 옅어진 그들의 사랑은 이별로 끝났다. 무기력한 진주의 삶은 직장, 어머니, 어울리는 미스 오가 전부다. 그러다 남자 기(起)를 만난다. 그는 그녀를 변화시킨다. 그러나 기와 진주는 다른 곳을 본다. 진주는 아이를 낳고 뿌리를 내리고 싶었지만 기는 자유로운 삶을 원했고 진주에게도 그런 삶을 권한다. 기의 바람과 불륜은 진주에게 질투와 동시에 욕망을 불러온다. 진정 진주가 원했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잠과 꿈> 속 혜기도 다르지 않다. 한국엔 친정 엄마가 있고 남편 순구와 아들 완이가 있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키우는 일상은 단조롭다. 공원에서 옛 친구 서윤을 만나면서 건조한 삶에 약간의 활기가 들어온다. 한국에서 결혼에 실패한 서윤은 선생님이라 부르는 남자와 산다.

서윤이 직장에 나간 후 그는 제자라는 이유로 많은 여자를 유혹하고 만난다. 남편과는 다르게 자신을 긴장시키는 남자에게 혜기는 빠져든다. 거기다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여자가 있다고 통보한다. 혜기는 순구의 불륜을 견딜 뿐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다. 끓어오르는 열망을 뻔뻔하게 터트릴 수 없었던 혜기는 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민자, 뉴욕 주재원, 유학생 등의 일상이다. 그들은 쉽게 관계를 맺지만 쉽게 단절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관계가 아닌 소모적 관계에 놓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왔지만 누군가는 도피처였으므로.

 ‘창밖으로 가로수의 헐벗은 가지가 온천지에 구원의 손길을 청하는 듯 바람에 휘청휘청 아무 데나 절을 해대고 있었다. 나는 나무와 같아, 뿌리가 땅에 박혀 움직이지 못해. 엄마, 전 무게로 내게 기대지 말아요, 나는 엄마가 생각하듯 행복하고 젊지가 않아, 기력도 없고 생기도 없어. 엄마, 다시 한 번 내게 엄마가 되어줘요, 어린 나를 큰 날개로 봄볕같이 안아줬듯.’ <잠과 꿈, 220쪽>

 김지원의 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평범의 범주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그들은 사랑과 삶,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며 흘러간다. 하여 답답하고 애처롭다. 불확실한 일상에 대한 불안과 위태로움을 안고 사는 수많은 진주와 혜기가 떠오른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 덩어리인 삶, 우리네 생은 왜 이리 가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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