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소설 <괴물>에 실망?
이외수 소설 <괴물>에 실망?
  • 김현태 기자
  • 승인 2014.02.04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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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소금밭인데 오랜만에....>를 읽다가

 

[북데일리] <마음은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새움. 2014)는 제목이 멋들어진 소설이다. 마음이 소금밭이라. 시대정신에 대한 불만족이든, 개인적인 삶의 신산함이든 엄청나게 독특한 제목이다.

그러나 이 제목으로부터 싹튼 호기심은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굳어진다. 이 책은 일종의 서평이나 독후감 혹은 비평이다. 포괄적으로는, 책을 읽고 난 뒤 그에 대한 생각을 쓴 글이라는 뜻이다.

작가가 첫 번째로 비평의 도마 위에 올린 책은 이외수의 장편소설 <괴물>이다. 작가는 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이명원씨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라고 표지안쪽에 소개되어 있다. 글은 텍스트로 삼은 ‘괴물’이라는 이름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으며 시작한다.

[사전적으로는 ’괴상한 사람‘을 뜻하는 괴물은 일반적으로는 인간다움의 덕목에 미달된 ’야만‘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야만‘으로 추방된 그것들이, 실제로는 인간다움의 핵심을 이룬다는 지적이 최근 들어 일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괴물은 야만이다. 그런데 야만은 실제로 인간다움이다. 그렇다면 괴물이 인간답다는 것인가. 대체 무슨 논지를 전개하려고 이 대목을 넣었을지 궁금증이 인다. 다음 글이다.

[파괴적인 욕망, 비이성, 광기를 포함한 반사회적인, 때때로 탈사회적인 그 요소들이 환기되어 시작하면서, 문명과 이성으로 요약되는 인간다움의 허구성에 대한 논의가 백가쟁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다움의 허구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는 뜻인데, 그런 논의가 언제 어디서 그렇게 활발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논의를 왜 밑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것인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저자는 <괴물>에 대해 매우 실망스런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 부분은 참 신선했다. 왜냐하면 엄청난 트위터 팔로우를 가지고 있는, 이미 유명해서 높은 반열에 앉아 있는 이외수라는 소설가의 작품을 그토록 솔직하게 평가한 비평을 본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글.

[이 소설은 삽화적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 각각의 삽화 속에 거의 50여 명에 가까운 인물들이 등장하여,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기이하다면 기이한 사건들을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그 사건들은 삽화적 구조에 걸맞게 매우 단편적이어서, 각각의 다른 사건들과 내적으로 연관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괴물적 존재, 그러니까 소설 속에서 ‘초생성서’라는 죽음의 바이러스를 유포하고, 독침으로 전생의 원수들을 살육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고 있는 진철은 1권의 초반부에 등장하다가 이 소설 2권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여, 무예소년 송을태에게 제압당하는 것으로 주인공으로서의 의무를 다한다.]

<괴물>에 대한 전체적인 소개를 했다. 본격적인 비판은 다음 대목이다.

[그는 ‘초생성서’라는 일종의 살인 바이러스이자 새로운 경전을 인터넷에 유포시키기도 하는데, 그 내용이 지극히 소박할 뿐만 아니라 도대체 그 소박한 내용을 읽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죽음에 침잠한다는 설정 자체가 내게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소위 불온한 유인물이 다수의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파괴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일부 내용이 치밀하지 못해 설득력이 없다는 의미다. 본격적인 소설 속 인물 비평은 그 다음이다.

[‘괴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내게 전혀 괴물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몇몇 애니메이션이나 출판만화에 등장하는 도착적 인물들의 행태를 비슷하게 반복하지만, 적어도 문학에서 표현돼야 마땅할 ‘풍요한 내면’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 단순화된 인물들에게서 ‘괴물’의 흔적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독자들이 이 소설에서 ‘괴물’의 출현을 기대했다면, 그 기대는 손쉽게 배반당할 것이다. <괴물>에는 ‘괴물’이 등장하지 않으니까.]

작가는 소설 속의 인물이 ‘풍요로운 내면’을 보여주고 단순화 되어서 전혀 괴물스럽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괴물>을 읽지 않는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내면이 어째서, 어떻기에 풍요롭지 않다는 것인가. 뭔가를 비판하려면 그 근거를 자세히, 논리적으로 세워야 한다. 말하자면 '이러 이러해서 실망스럽다'라고 해야 한다. 그 글을 읽고, 독자는 '아하, 그렇겠구나!'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이 부분이 앞에서 ‘괴물론’, 즉 괴물이 인간답고, 인간다움의 허구성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 지 전혀 알 수 없다. 뭔가 이야기를 하려다 만 느낌이다. 대체 앞에서 변죽을 왜 울렸단 말인가.

그러니 이 소설에 대한 쓴 소리를 누가 공감하겠는가. 이 글이야 말로 '괴물'의 출현을 본격적으로 기대했던 독자들을 심히 실망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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