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아이들을 집에 있지 못하게 할까
무엇이 아이들을 집에 있지 못하게 할까
  • 북데일리
  • 승인 2007.02.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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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크리스티네 뇌스트링거의 <언니가 가출했다>(우리교육. 2007)를 읽기 시작한 시각은 새벽 3시 30분이었다. 앞에만 살짝 보고 이미 늦었지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아침에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책을 덮지 못해 결국 뜬 눈으로 아침을 맞게 되었다.

<오이 대왕>란 작품을 통해 크리스티네 뇌스트링거를 알았을 때에는, 이 작가에게는 재치와 기지가 넘친다고 생각했다. 그 때도 가부장적 아버지와의 소통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의 심리를 다룬 작품이란 점에서 짐짓 무겁게 흐를 수도 있었는데, 얼토당토않은 기발한 이야기투르기로 시종 코믹하고 발랄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 중심을 잃지 않은 어린이책이라며 입이 닳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언니가 가출했다>에 나오는 화자는 열 세 살의 소녀 에리카이다. 에리카에게는 일제라는 열다섯 살이 된 언니가 있다. 평범한 외모의 에리카와는 달리 일제는 누가 봐도 다시 쳐다보고 싶어질 만큼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제는 빼어난 외모 못지않게 빼어나게 거짓말을 잘 한다. 마치 환상 속에서 튀어나온 공주인 것처럼 자신의 배경을 허위로 꾸미기도 하고, 동정이 필요한 대상 앞에서는 입에 침 한 번 바르지 않고 자신을 비참한 신세로 전락시킨다. 에리카는 일제 언니의 거짓말에 자신이 속았음을 알지만, 친할머니에게 들은 말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어 그런 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작가는 일제와 에리카 자매의 친할머니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누가 거짓말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 그리고 잘 돌봐줘야만 하지.”

사실 열다섯의 일제가 거짓말로 끊임없이 타인과 자기 자신을 속이는 데는 나름대로 심각한 원인이 있다. 자매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한동안 친할머니에게 맡겨졌다가 엄마의 재혼으로 새아버지의 집에서 배다른 형제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처음 부분에서는 거짓말만 하고 책임감도 없이 툭하면 집 밖으로만 나가려 드는 일제에게 공감을 할 수 없었다. 가정 형편이 어떠하든 간에, 일제의 행동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성숙한 공감능력 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일제가 가출한 동기가 서서히 밝혀지면서부터, 일제의 엄마가 보이는 태도 쪽으로 일제로 향했던 공격의 시선이 방향을 틀게 되었다. 상대의 입장에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절실히 필요한 것인지 알려하지 않고 딸보다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엄마의 모습이 드러났다. 칭찬 보다는 질책을 일삼고, 보듬어 주기보다는 아이를 궁지로 내모는 엄마의 태도는 인생을 고민하며 산 어른의 자세라고 보기 어려웠다.

이야기는 ‘언니는 집을 나갔고, 나는 언니가 다시 돌아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에리카의 독백에서 시작되었는데, ‘무슨 사연이 있기에 언니의 귀가를 기다리지도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앞섰다. 하지만 이내 나이보다 침착하고 조숙한 에리카를 통해서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럴만한 이유가 드러나리란 예감을 받았는데, 에리카는 그저 어른들이 경찰에만 일제의 가출 신고를 하고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동안 적극적으로 언니의 행방을 찾아 나서는 모습으로 내 예감에 동조해 주었다. 그런데 반듯한 에리카도 언니의 가출 동기가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사건을 경험한다.

에리카가 일제의 행방을 수색하던 중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다 약속된 귀가 시간을 어기게 되었을 때이다. 일제의 행방불명 뒤 식구들은 초긴장 상태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에리카의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일제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에리카의 따귀를 때린다. 이 일로 에리카는 자신의 언니 일제가 느꼈을 외로움과 빈 어머니의 자리를 느끼게 된다. 일제가 어디에 알게 된 에리카가 어머니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서 이다. 이미 어머니와는 대화의 고리가 끊어진 듯 막막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작가는 일제의 가출 동기를 친할머니의 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언니가 가출한 것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또한 물질적 제공으로 마치 부모의 역할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하는 부모들을 향해 작가는 친할머니의 목소리를 빌어 이야기 속에 개입하고 있다.

“매 끼니를 챙겨준다고 해서 엄마가 할 일을 다 한건 아니지요. 방이 예닐곱 개가 되더라도 집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의붓아버지가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고 그냥 있다면, 그건 친절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높아가고 있다. 결혼한 커플 4쌍 중 1쌍이 이혼을 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 <언니가 가출했다>는 아이들의 가출 문제의 핵심을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해체된 것에 두지 않는다. 일제의 친할머니는 일제가 친할머니와 살 때는 삐뚤어진 심성을 갖고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 말이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으로 비록 할머니 밑에서 양육되고 있지만,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반드시 부모가 아니더라도, 따듯한 배려와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면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의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언론에서 ‘말없는 폭력’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욕을 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럴 듯하게 보이는 무관심이다. 이 ‘조용한 폭력’의 해악에 대해 꼬집는 저학년 어린이를 독자로 하고 있는 국내창작 동화를 본 적이 있다. 늘상 시끄럽게 옥신각신 싸우는 부모를 둔 아이와 외면적으로는 아무 일이 없는 듯 부드럽지만 자신들의 감정을 속이며 살아가던 부모를 둔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자의 아이가 후자의 아이를 부러워하는 모습에서 시작되는데, 나중에 후자의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부모가 별거를 결정해버리는 태도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이 아이는 차라리 자신의 부모도 싸우더라도 곧 화해하기를 반복하는, 자신들의 감정에 솔직한 부모를 둔 전자의 어린이를 부러워한다.

이 책을 쓴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는 아이들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세심하게 잡아내는데 천재적이다. 1936년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1970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200여 권이 넘는 어린이 책, 청소년 책을 썼다.

<언니가 가출했다>를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수취인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 아이들을 집 안에 있지 못하도록 만드는가?’ 이 질문에 대한 근본적 해답은 바로 부모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가출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 아이들에게 원인을 떠넘는 것이야 말로 어른들의 구차한 이기심이다. 정말 좀 솔직해 보자. 내 아이랑 터놓고 대화를 할 준비가 된 어른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우선 내 자신에게 해보자.

나는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청소년 책이나 고학년 어린이 책으로 한정짓고 싶지 않다. 이 책은 대화를 잃어가는 우리 세대의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함께 공유해야 할 문제작이기 때문이다.

[김영욱 시민기자 syl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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