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사고 파는 모텔 601호
시간을 사고 파는 모텔 601호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6.18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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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의미를 묻는 소설 <시간을 담은 여자>

 [북데일리]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집중해서 할 땐 시간이 금방 가지. 게임할 때나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을 볼 때 느껴봤을 거야. 사람은 얼마나 시간을 집중해서 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거든. 여기서는 그런 시간의 조각을 빼서 저장해놓는 거고.” 186쪽

 2012년 <나는 랄라랜드로 간다>로 제 10회 푸른문학상 ‘미래의 작가상’을 수상한 김영리의 <시간을 담은 여자>(2013. 새움출판사)는 시간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시연은 시간을 사는 관리인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시간을 사서 필요한 누군가에게 파는 것이다.

시간은 잠을 자는 동안 헌혈을 하듯 주사기로 빼낸다. 그저 잠만 잘 뿐인데 하루에 100만원을 준다니 만석은 시간을 팔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사업은 부도가 났고 남는 게 시간이고 생활비는 없다. 결혼 10년 만에 얻은 아들 영일은 학원하나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

 모든 건 킬링타임모텔 601호에서 이뤄진다. 시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사업을 계획한 건 아버지였다. 갑자기 아버지가 쓰려져 외국에 있던 시연이 돌아왔다. 시연의 오랜 연인 선우가 필중과 모텔을 돌봤다. 필중을 깨우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시연은 사람들의 시간을 샀다. 사람들에게 뽑아 낸 시간은 아버지와 맞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주입해도 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모텔에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쏘반은 실체를 밝히려 취직한다. 6층은 출입이 제한되고 필중은 보이지 않았다. 캄보디아 프놈펜을 떠나 한국에 온 쏘반은 친구의 복수를 해야 했다. 일을 하는 대신 잠을 자며 돈을 벌다 친구들의 삶은 엉망이 된 것이다. 잠을 자느라 삶이 망가진 건 만석도 마찬가지였다. 아내 정애와 아버지 대길까지 시간을 팔다 결국 아버지는 죽고 만다. 만석과 쏘반은 같은 시연을 찾아가 책임을 따졌지만 그들의 시간을 찾을 수 없다.

 대길의 시간으로 필중은 긴 시간 깨어났지만 연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시연은 자신의 시간을 아버지에게 주기로 결심한다. 많은 시간을 뺀 부작용으로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는 시연을 보고 쏘반과 만석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모두에게 돈이었던 시간이 사랑하는 이를 빼앗은 거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뒤늦게 깨닫는다.

 ‘시간을 지배하면 같은 시간대에 살면서도 뭐든지 남들보다 두 배의 속도로 누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도의 집중된 시간이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깊이 연구에 매진할 수도 있고 거기서 평생 있을까 말까 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이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얻지 못할 엄청난 부를 이룰 수도 있다. 시간은 활동하는 사람의 능력과 기호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가 무한히 열려 있다.’ 256쪽

 정말 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면 엄청난 부를 이룰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소설 속 쏘반의 친구와 만석처럼 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 없다. 시간이 이토록 대단한 것인지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을 소재로 한 다양한 소설 중 극적이면서도 시간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린 소설이 아닐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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