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부 해서라도...성공시키고 싶었던 책"
"파출부 해서라도...성공시키고 싶었던 책"
  • 북데일리
  • 승인 2006.10.1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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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3만부 돌파한 ‘뿌리깊은 나무’의 밀리언하우스 이현주 팀장

“1443년(세종25년) 가을 경복궁 후원, 궁궐 우물 안에서 젊은 집현전 학사의 시체가 발견된다. 단서는 피살자가 남긴 수수께끼의 그림과 문신, 그리고 숱한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저주받은 금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도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이 이어진다. 매일 밤 이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 왕의 침전에 출몰하는 귀신의 정체, 저주받은 책들의 공동묘지... 누가 왕의 학사들을 죽였는가? 사라진 금서는 어디로 갔을까?”

역사추리소설 <뿌리깊은 나무 1,2>(밀리언하우스. 2006)의 줄거리 일부다.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궁중의 음모와 비밀을 소재로 한 이 책은 13만부를 돌파하며 ‘한국형 토종 팩션(fact+fiction)’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힘 있는 단문과 탄탄한 플롯. 오랜만에 만난 한국형 팩션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 또한 뜨겁다.

“천문학, 음악, 수학, 모든 분야의 기호와 상징들이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는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쓰는 언어 속에 담기게 되는지 읽어나갈 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ell)

“세종의 인간적인 군왕으로써 집현전 학자와 더불어 그 얼마나 뼈아픈 노고와 노력이 있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세계 유일의 모국어 한글이 있음을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는 바다”(ch1988)

“생각지 못한 독특한 소재들을 소설로 끌어 들여 재구성 한 작가의 놀랄만한 필력이 대단하다”(moonkea)

책은 직원 6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출판사 밀리언하우스의 긴 ‘사투’ 끝에 완성됐다.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내는 마케팅 툴을 알지 못했던 출판사는 그야말로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혀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책을 만든 이현주 팀장은 밀리언하우스 근무가 출판경력의 전부인 2년차 편집자. 그녀가 들려준 제작배경을 통해 신생출판사가 이뤄낸 빛나는 결실의 비결을 엿들을 수 있었다.

“기자에서 편집자로”

이 팀장은 출판 일을 시작하기 전 생활정보지 씨티라이프에서 취재기자로 일했다. 2년 전 ‘밀리언하우스’ 창립과 함께 출판계에 발을 내딛은 그녀는 “글 쓰는 건 똑 같지만 잡지는 정보를 얻기 위해 보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호흡이 짧은 반면, 책은 무엇인가를 얻어야겠다는 기대를 갖고 보는 독자가 많기 때문에 글의 호흡도 길고 콘텐츠 적인 측면에서도 완성도가 훨씬 높다”며 잡지와 출판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인터뷰 내내 이 팀장은 울려대는 전화를 받아내느라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아직 출판사 규모가 작다 보니 ‘모든 부분’을 총괄해야 하는 것이 그녀의 책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팀장의 얼굴에는 짜증스러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유가 주어지는 기자에 비해 책임도 크고 일도 많지 않냐는 질문에 “여러 부분을 관리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지만 모든 분야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며 그녀는 웃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일하는 매일이지만 수업 적으로는 배우는 것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기자로 일할 때는 글만 쓰면 됐지만 이제는 책을 어떻게 포장해서 어떤 콘셉트로 선보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까지 안아야 하니 책임이 막중하지만 기자만큼이나 편집자라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다는 그녀. “10만부라니 대단하다”는 말에 “더 나가야죠!”라는 대답으로 맞받아치는 기개에서 여전한 ‘기자근성’이 엿보였다.

“기자시절 인연으로 작가 만나”

밀리언하우스가 저자 이정명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이 팀장이 기자시절 쌓은 인맥덕분이었다. 기자 시절 취재차 만난 이정명과 인연을 이어오던 이 팀장과 주간은 그가 훈민정음과 관련된 차기작을 준비한다는 소리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판사를 차릴 즈음에는 본격적으로 대쉬했다. <천년 후에><해바라기> <마지막소풍>등의 히트작을 낸 작가라 신생출판사와는 계약을 맺기 힘들 것이라는 초조함에 더욱 악착같이 매달렸다.

“저희들의 끈질긴 요청 끝에 이정명 선생님께서 수락을 해주셨죠. 이 책에 모든 승부를 걸겠다고 말씀드렸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이 팀장은 이정명 작가와의 만남은 밀리언하우스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라고 했다. 국문과 재학 시절 ‘훈민정음강독’ 수업을 받으며 느낀 충격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따왔다는 작가의 말은 편집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한글창제를 둘러싼 의혹에 접근하는 소설의 방식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것이었다.

원고를 받아들고 출판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새로운 발상이라면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독자들이 어려워할 만한 고어들을 알기 쉽게 고쳐 쓰고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야 <뿌리깊은 나무>는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철저한 모니터링 과정을 거친 마케팅 기법”

신생출판사 밀리언 하우스는 유명작가의 작품도 아닌, 더군나다 소설을 어떻게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까? 그 마케팅 기법이 궁금해졌다.

이에 이 팀장은 대형출판사가 갖고 있는 마케팅 툴 같은 것이 없어 애를 먹었다고 답했다. 기존에 냈던 실용서, 경제경영서들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텍스트에 대한 확신이 컸던 만큼 각오 또한 비범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원고를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무능력한 부모라도 내 아이에게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누구나 파출부를 해서라도 그 재능을 키워 줘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겠죠. 딱 그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성공 시키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함량미달이다 라는 생각에 더욱 전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리 다부진 각오였는데 뭔들 못 했을까. 최종원고가 나오자마자 이 팀장은 모니터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모니터독자들을 대상으로 1천부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90% 이상이 극찬을 보내왔다.

한 독자는 “출판사가 잘해야 한다. 이렇게 좋은 책을 못 살리면 억울하지 않겠는가”라는 채찍까지 가해왔다. 역사관련 커뮤니티, 카페, 역사전문가, 작가, 국회의원 등을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도 진행했다. 따끔한 지적을 통해 작게는 오탈자부터 시작해 크게는 역사적 오류까지 잡아 나갈 수 있었다.

출간 이후에는 독자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노출이 되도 록 전천후 마케팅을 펼쳤다. 라디오광고, 신문지면, 온라인 서점, 책포털, 북카페 등 모든 매체를 총동원해 책을 알렸다. 모 신문사의 기자가 외국팩션들과 나란히 어깨를 하고 있다며 책을 소개 한 이후에는 언론으로부터 더욱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이 팀장은 마케팅 툴이나 스킬이 부족했기 때문에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어보곤 했어요. 모니터링도 그렇고 모든 과정이 다 손이 가는 작업이었지만 그렇게 하고 나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마케팅에 대해 조금은 성숙해 진 것 같기도 하고요”

“<장미의 이름> <다빈치코드>에 못지않은 세련미”

이 팀장은 책의 인기 비결에 대해 <장미의 이름> <다빈치 코드>에 뒤지지 않은 ‘세련미’를 꼽았다. 독자들이 칭찬해 마다 않는 탄탄한 플롯과 복선, 과학적 추리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특히 ‘민족주의’를 끌어들이지 않고 소설적 요소만을 이용해 깔끔하게 구성한 것을 가장 자랑할 만 한 인기비결로 꼽았다. 추리소설 형식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여름시장을 공략해 좋은 결과를 얻었고 사극이 인기를 끌고 있어 시장분위기 역시 좋았다. 시장상황이 좋은 기반을 갖춰 준 셈이다.

학교 다닐 때는 좋아하는 책만 읽는 등 편식이 심했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만들다 보니 취향이 폭넓어 졌다는 이 팀장은 독자들이 많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뿌리깊은 나무>의 성공을 통해 문학적 교두보를 다진 밀리언 하우스. 신선함과 도전정신을 무기로 실력 있는 신예로 거듭나고 있으니 그 ‘밝은’ 미래를 기대해 볼 만 하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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