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책클럽 운영자 정은지씨
싸이월드 책클럽 운영자 정은지씨
  • 북데일리
  • 승인 2006.09.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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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대에 책 1천권 독파, 후배 말듣고 충격받았죠"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책만큼 값진 선물이 또 있을까.

인터뷰 시작 전, 기자와 ‘올 한해 책 100권 읽기’(club.cyworld.com/100books)(이하 ‘올백’)의 운영자 정은지(25)씨는 서로가 예상치 못했던 책 선물을 주고받았다. <행복주식회사>(21세기북스. 2006)와 <행복한 이기주의자>(21세기북스. 2006), 공교롭게도 두 책 제목에 모두 ‘행복’이란 단어가 들어있다.

상대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워하며, 그렇게 서로가 선물한 ‘행복’을 품에 안은 채 ‘우리들의 행복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았던 ‘완벽에의 충동’

국민은행 안양동 지점에 근무하는 정씨. 입사 3주차의 ‘햇병아리’다. 사회초년생다운 풋풋함을 그대로 간직한 그녀는 인터뷰 내내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막힘없이 이어갔다.

“책을 좋아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책 자체가 좋은 거죠.”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우문’에 책이기 때문에 좋다는 ‘현답’을 준 정씨. “인상 깊은 구절을 읽을 때면 내가 지녔던 한계를 뛰어넘는 기분”이라는 그녀는 최근 <완벽에의 충동>(21세기북스. 2006)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고. 책에 실린 세계 여자 테니스 챔피언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의 ‘시도하지 않은 것도 포함해서 실패다’라는 말을 읽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는 것.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갈매기의 꿈>(현문미디어. 2003)을 꼽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녀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책 속 문장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처럼 100권을 읽으면, 100가지 다른 생각을 머리에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정씨는 “독서는 생각을 넓히는 길”이라고 말한다.

“20대에 책 천권은 읽어야한다” 후배의 말 충격

사실, 정씨가 처음부터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은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문제집 파고들기에 바빴고, 대학시절엔 취업준비를 위해 토익교재를 본 것이 독서의 전부였다. “책 커뮤니티 운영자가 책을 많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오해”라고 말하는 그녀가 책 클럽을 운영하며, 회원들에게 올 한해 책 100권을 읽자고 외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정씨는 이에 대해 “대학신문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녀가 다닌 대학의 신문사는 도서관에서 대출을 가장 많이 받은 학생에게 상을 줬다.

4학년 마지막 학기, 정씨는 우연히 그 상을 받은 한의대생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됐다. 자신보다 2살 어린 후배의 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1년에 백 권씩, 20대에 천권은 읽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에 정씨는 ‘나는 대학 생활동안 무엇을 했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어 후회는 곧 결심으로 이어졌고, 작년 12월 말 친구들에게 “내년에는 책 100권을 읽겠다”고 선언했다.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정씨는 2006년 1월 싸이월드에 클럽 ‘올백’을 개설했다.

사람들이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연초와 맞물려, 클럽은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일주일 만에 천 명이 가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떠올린 ‘책의 여행’

개설 9개월에 접어든 현재 클럽의 회원 수는 3,940명, 게시물은 11,273개. 이처럼 꾸준히 성장해 온 ‘올백’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하는 책읽기를 자랑으로 내세운다.

‘이 책을 읽는 중’ ‘목표달성’ ‘책의 여행’ ‘사랑의 책 나눔’ 등의 게시판은 함께하는 독서, 그 실천의 장이다.

먼저, ‘이 책을 읽는 중’ ‘목표달성’은 회원들이 서로 읽고 있는 책을 체크하고, 목표량을 채울 수 있도록 격려하는 공간이다. 올해 중순에 가입한 회원들도 있기 때문에 한 달에 8권으로 계산해, 목표할 독서량을 설정한다. 9월에 가입한 회원이라면 남은한해 34권을 읽으면 된다.

회원들끼리 책을 돌려 읽는 ‘책의 여행’은 정씨의 아이디어. 영화 ‘아멜리에’(2001. 장 피에르 주네 감독)에서 주인공이 ‘난쟁이 인형’을 전 세계로 여행시키며, 사진을 찍는 데서 힌트를 얻었다. “내 책도 이렇게 여행을 보내면 어떨까?”는 생각에서 시작된 ‘책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운영된 것은 올 3월부터. 책 1권 당 10명씩 돌려보고 있으며, 현재 총 10권이 ‘여행’ 중이다.

정씨는 “사람들이 꼭 책과 함께 선물을 ‘바리바리’ 싸서 다음 주자에게 보낸다”며 회원들 간에 오고가는 정을 은근히 자랑했다.

책에 따라오는 것이 비단 선물만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감동받은 부분에 밑줄을 긋고, 페이지를 접고, 그렇게 회원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더해진다”며 “내가 떠나보낸 책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라고 털어 놓았다.

‘책의 여행’이 클럽 회원을 위한 게시판이라면 ‘사랑의 책 나눔’은 단체를 위한 것. 지금까지 회원들의 책 30여권을 기증받았고, 50권이 채워지는 대로 어린이집 등 책을 필요로 하는 단체에 보낼 예정이다.

운영자는 호랑이 선생님, 회원은 귀여운 학생?

정씨는 ‘올백’의 운영자라기보다 ‘선생님’에 가깝다. 그녀는 ‘이 책을 읽는 중’을 ‘검사’하다가, 책을 읽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회원이 있으면 재촉의 쪽지를 보낸다. “00님, 책 다 읽으셨나요? 어서 읽고 글 올리셔야죠”. 자율적으로 책을 읽는 클럽에서 ‘간섭’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러한 쪽지에 회원들은 한결같이 고마워한다고.

클럽 회원들을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소개한 정씨는, 이를 보여주는 일화도 귀띔했다.

클럽과 출판사가 함께 진행하는 이벤트. 서평이 제대로 안 올라오자 그녀는 패널티를 적용하기로 했다. 게시기한을 두고, 기한 내에 서평을 올리지 않으면 다른 이벤트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 것.

그런데 한 회원이 기한 전에 서평을 올리고, 후에 글을 수정하자 작성일이 바뀌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걱정이 된 회원은 숙제를 제때 제출하지 못한 학생처럼 ‘울먹임’에 가까운 쪽지를 보내왔다. 이보다 더욱 눈길을 끌었던 건 그 회원의 서평에 달린 ‘귀여운’ 덧글들.

‘이 분 기한 안 넘겼어요. 기한 전에 올린 거 제가 봤어요.’

‘저도 봤어요.’

‘저도 봤어요. 은지님. 패널티 주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일에 앞장서서 챙겨주는 분위기에 당사자는 감동했고, `호랑이 선생님` 정씨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고.

“따뜻한 클럽 운영의 노하우는 정성”

이같이 ‘올백’이 인간미 넘치는 공간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정씨의 노력도 한 몫 ‘단단히’ 했다. 그녀는 매일 밤 2-3시간 정도를 투자해 클럽에 올라온 글을 전부 읽고, 덧글을 단다. “일 같지 않고, 사람들 글 읽는 게 마냥 재미있다”는 정씨의 ‘갸륵한’ 정성에 회원들도 동화된 셈이다.

클럽 내 사진첩 ‘잘찍은 이벤트사진’은 이렇게 맺어진 회원들의 유대감을 엿볼 수 있는 공간. 회원들이 직접 찍은 기발한 사진엔 이를 칭찬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회원들의 덧글이 줄을 잇고 있다.

정씨는 "서로의 글만 읽다가, 사진첩을 통해 얼굴을 보고 나니 한층 친밀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올백은 이처럼 책 읽기부터 개인의 일상까지 챙겨주는 따뜻한 클럽"이라고 전했다.

*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기자는 정씨의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그녀는 클럽을 자기 혼자 힘으로 끌어온 것이 아니라며, 운영진(부클럽장: 방은혜(26), 김근숙(23) 사진담당: 박천갑(26), 게시판담당: 구세라(23))도 소개해 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올백’이 인간미 넘치는 클럽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대목이었다.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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