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계화` 일본이 한국의 10배 훌쩍
`문학의 세계화` 일본이 한국의 10배 훌쩍
  • 북데일리
  • 승인 2006.08.17 11: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한국문학번역원 윤지관 원장

이윤기, 안정효, 임홍빈, 이세욱, 양억관, 김난주, 강주헌....

이름만 들어도 작품이 연상되는 국내의 유명 출판번역가들이다. 해외문학을 번역해 한국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하는 번역가들의 삶은 이름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낯선 이국의 언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이들의 ‘글 작업’은 안개에 가려진 일출처럼 숨어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 세자만 보고도 책을 구매하는 독자가 있을 만큼 인기가 높은 번역가도 있지만 여전히 독자에게는 ‘멀고 낯선’ 존재들이다.

한국문학을 해외에 번역, 소개하는 번역가인 경우 그 ‘서먹함’의 정도는 더하다. 고은, 황석영, 이문열, 김훈...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이국의 언어로 번역, 소개하는 번역가들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다.

일반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번역가들이 보다 편리한 여건에서 한국문학의 외국어 번역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 바로 한국문학번역원(www.ltikorea.net)이다.

2001년부터 민간재단 형태로 운영되어 오다 작년에 특수법인화 된 한국문학번역원은 ‘빠듯한’ 살림살이 안에서 한국문학을 세계로 알리는 일에 전념하는라 전 직원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 4월 한국문학번역원장으로 취임한 윤지관(52) 원장은 인터뷰 당일도 빡빡한 스케줄로 바쁜 모습이었다. 윤 원장의 이마 끝에 송글송글 매달린 땀방울은 폭염의 흔적이라기보다는 긴장된 일정을 견뎌내는 육체의 ‘분발’처럼 보였다.

‘문화번역자’로서 그 역할과 위상이 강조되고 있는 한국문학번역원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는 학자답게 진지했고, 글쟁이처럼 열정적이었다.

국력에 비해 우리문화 해외 소개는 미미

한국문학번역원은 한국문학을 세계로 소개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 한국문학이 도달한 성과에 비해서 해외에 알려진 정도가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이 과정에서 힘을 실어 주었다.

“국력에 비해 우리문화소개는 너무 부족한 실정”이라는 윤 원장의 말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한국문학이 도달한 문학적 성취를 해외에 소개할 때가 이미 지났건만, 이에 대한 지원과 사회인식은 현저히 부족한 상태.

한국문학번역원은 그런 `갈급한` 분위기에서 태동했다. 한국문학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 출간하고 작품에 대한 홍보를 담당하는 것이 번역원의 주 업무다.

민간기업은 물론 국가가 발벗고 나서 번역 사업을 지원하는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우리의 번역 현실은 열악하다.

90년대 초반 이미 2만 종 이상을 외국어로 번역한 일본과 겨우 1천5백여 종을 번역한 한국의 번역 현실은 견주는 것이 무의미 할 정도로 그 격차가 매우 크다.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문학의 세계화`는 일본이 한국보다 10배이상 앞서는 셈이다.

윤 원장으로부터 들은 일본과 한국의 번역 현실의 격차는 생각보다 컸다.

“일본은 메이지시대부터 번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국가 정책상으로 번역을 지원해서 당시 ‘근대화는 번역의 산물’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죠. 민간기업까지 지원사업에 동참해 패전 이후 20~30년 사이에 상당한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일본문학의 해외 진출이 이루어졌고요 <설국>(민음사. 2003)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1968년 당시 그의 작품은 150~200여종이 외국에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번역물들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있었다는 것이죠”

노벨 문학상이 문학적 성취를 답보하는 전부는 될 수는 없겠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탄생시킨 일본의 문학적 성취에 질투의 시선을 갖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했다고 거론 되는 고은 시인의 작품도 이제 겨우 30여권 번역 소개 되었을 뿐이다.

우리 문화의 세계화에 기여 할 수 있는 번역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고은과 황석영 작품 해외서 열띤 반응

부족한 재정 가운데서도 번역원이 거둬 올린 성취가 있다면 무엇보다 한국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한 것. 윤 원장은 “국가별, 작가별, 번역의 수준에 따라 차이가 달라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젊은 작가보다는 고은, 황석영, 이문열의 작품이 많이 읽힌다”고 말했다.

“고은의 시집은 재판이 들어갔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말도 덧붙였다. 황석영의 경우 판권을 갖고 있는 외국 중요 에이전시가 있을 정도라고.

윤 원장은 “한국문학을 해외로 번역, 소개하는 작업에 작가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작가들도 타 언어, 문화와 교섭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면 한국문화와 현실에 대한 이해도 심오해지고 좀 더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인목이 심화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자기 문화의 현실, 가치관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펴는 것이 작가들의 몫이라면 이를 지원 하는 것은 번역원이 할 일이다.

윤 원장이 말하는 번역원의 임무란 경제적인 국력과 문화적인 국력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메우는 것이다. 크게는 한국문화의 역량과 위상을 번역해내는 ‘문화번역’이야 말로 번역원이 가지고 나가야 할 총체적인 ‘의무’ 이자 ‘책임’ 이다.

일본에겐 프랑스 번역가 세카티가 있다

“도요타. 소니를 제쳐도 결코 좁혀지지 않는 거리, 그것은 바로 문화적 국력의 거리다. 그 배경에는 일본어의 창조적 성취들을 각국어로 번역해 문화국가를 만들어간 일본 지도자들의 혜안이 있었다. 일본이 `세카티`를 가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윤 원장이 쓴 중앙일보 칼럼의 한 대목이다. 프랑스 대표적인 출판사 쇠이유의 편집장 르네 드 세카티를 언급하면서였다. 세카티는 작가이면서 탁월한 일본문학 번역자.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기반을 닦아 준 인물이다.

윤 원장은 칼럼을 통해 “번역은 민족 간 소통의 바탕이므로 지구화 시대에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필수요건”이라며 “번역에 투자하고, 한국문학의 `세카티`들을 키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의견을 들려달라고 했더니 윤 원장은 대뜸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가 깊은 좋은 번역자를 만나는 것은 진정한 행운”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해외에 우리문학을 소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문학의 훌륭한 문학적, 창조적인 성취를 제대로 된 언어로 번역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야 그 가치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번역가가 필요하다.

이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윤 원장은 이에 ‘번역인들의 인프라 부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주요 언어권에서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번역가가 손으로 꼽을 정도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양나라 문화에 대해 모두 관심이 있고, 문학적 감수성도 있어야 하고 작품의 제대로 된 성과를 해당 언어로 옮길 수 있는 번역가를 길러내는 일은 1~2년 사이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에 있는 외국문학 번역가도 길러야겠지만 해외에 있는 한국문학 전공자,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번역가로 길러내는 과정에 지원하는 문제는 시급한 해결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원장은 인터뷰 내내 번역 인프라 확충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이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예산 부족으로 당면과제 해결 난항

번역원의 올해 총 예산은 60억 원. 이중 20억 원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수급한 한국의 책 100권 번역 등을 포함한 ‘계기성 사업’에 해당하므로 실질적인 예산은 40억 원이다. 산적해 있는 일에 비해 부족한 예산이다.

예산 문제가 나오자 윤 원장은 “해결해야 할 주요 현안”이라는 말로 무거운 입을 뗐다.

국회에서도 예산 부족에 대한 인식은 하고 있으나, 부족한 경제적 현실 때문인지 해결책은 불투명한 상태라는 것이다.

윤 원장은 예산이 확보되면 가장 먼저 “각 나라별 번역 인프라를 길러내기 위해 장기적인 투자를 하고 싶다”고 했다. 번역가를 많이 길러 놓으면 우리의 문화역량이 전달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 있어도 좋은 번역가가 없으면 이것을 알릴 기회가 없다”는 윤 원장의 말은 우리 사회 전체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중요한 발언이다.

이 외에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제대로 된 점검, 평가체계를 갖추는 것, 한국문학을 대표 할 수 있는 선집을 중심언어인 영어로 번역 작업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문학 대표 선집을 만들어 한국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로 만들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준비가 필요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한국문학에 대한 열절한 애정과, 번역원장으로서의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우리 문화를 세계로 알리는 일, 불필요한 분야에 충당되고 있는 예산을 줄여서라도 투자되어야 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평과 번역 나름대로의 즐거움 있어

윤 원장은 계간 ‘창작과 비평’ ‘실천문학’을 통한 비평 활동, <오만과 편견>(민음사)을 포함한 다수의 번역서를 출간한 번역가로 유명하다. 덕성여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영문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에게 비평과 번역의 경계선은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저에게 있어 비평과 번역은 다른 작업은 아닙니다. 둘 나름의 즐거움이 있지요. 작품이 가진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 평론가의 임무라면 두 나라 언어 사이의 교류를 담당하는 것은 번역가의 임무입니다. 제 경우는 영문학인데 번역 중에는 영어와 한국어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영어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꼭 맞는 한국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적인 차이가 그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적합한 언어를 찾다 보면 두 나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집니다. 작중의 의미에 딱 맞는 언어, 표현을 찾아냈을 때 번역가로서 기쁨을 느낍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주 업무인 번역, 출판 지원을 포함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윤 원장은 9월 25, 26일 양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한불 문학행사부터 소개했다.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 행사에는 한국 작가 5인과 르 끌레지오(J. M. G. Le Clezio)를 포함한 프랑스 대표작가들이 참여한다.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에서는 ‘한국의 여성문학’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여성작가, 시인, 평론가를 초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할 예정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출판사가 내기로 한 한국고전 100선 시리즈도 주요 현안 중 하나이다.

윤 원장은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 할 우수 번역가를 발굴하기 위한 ‘제5회 한국문학번역신인상’ 공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번역 인프라 확충’이라는 중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걸음”이라며 환히 웃는 그의 미소에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공모작은 2003년 1월1일부터 2005년 12월31일 사이 발표된 국내작가 단편소설 중 해당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어야 하며, 번역 언어는 영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5개다. 당선작은 언어권별로 1편씩 선정하며 수상자에게는 3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공모 희망자는 전화 (02-3448-4060)나 e-메일(hjjeon@klti.or.kr)을 통해 문의하면 된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