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경주, 몸을 말하다
시인 김경주, 몸을 말하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0.0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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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망울부터 복숭아뼈까지...높지만 끌리는 책

 

[북데일리]선연히 드러난 갈비뼈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밀어>(2012.문학동네)는 제목에 미혹되어 밀어(密語)가 아닌 밀어(蜜語)로 읽고 싶은 책이다. '몸에 관한 詩적 몽상'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말이다.

과연, 자신의 신체 기관에 대한 심도 깊은 탐색 여행을 시도한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김경주는 그런 이들을 질책이라도 하듯 뺨으로 시작하여 핏줄, 쇄골, 인중, 달팽이관, 귓볼, 솜털, 점, 콧망울, 관자놀이,복숭아뼈까지 45가지 신체 부위가 간직한 내밀함과 육체와 격리될 수 없는 그림자의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김경주의 산문만으로 이 책을 말할 수 없다. 그렇다. 이 책은 김경주만의 고유한 언어와 몽환적이고 오묘하게 신체 부위를 담은 사진이 함께 한다. 때로 사진 속 신체 부위는 은밀하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진 속 눈동자를 바라보다, 무릎을 구부리고 가지런히 모은 종아리를 보다가, 거울을 바라본다. 내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고, 내 쇄골뼈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추억한다. 여전히 떨림으로 각인된 어떤 이의 어깨를, 다시 한 번 맞잡고 싶은 어떤 이의 손가락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았던 누군가의 그림자를.

책을 통해 만난 신체 부위는 왠지 낯설다. 나는 한 번도 갖지 못한 보조개라든지, 제대로 볼 수 없는 등은 더욱 그러하다. '몸으로 부터 추방당한 세계'라 명한 등에 대한 글 중 이런 부분이 있다. '늑골의 숨소리' 란 글이다.

‘방 안에 가족은 서로 잠들어 있다. 시체들처럼 입을 벌리고 뒹굴고 어린 짐승들처럼 엉키며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계란처럼, 등을 돌리고 누운 사람들, 서로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서로의 몸을 그리워해야만 하는 날들의 일기처럼, 가장 앞쪽의 사랑을 가장 먼저 감추고 싶은 날들의 비애처럼, 등을 돌리고 누워 자는 사람들, 돌아누우면 배가 고플까봐, 허기를 감추는 등 속의 숨들, 늑골은 꼬르륵거린다. 나는 배가 고플 때 옆에 잠들어 있는 누군가의 등 속에 손을 넣고 있으면 뱃속이 따뜻해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허기虛氣의 기후를 쓴다. 꼭 옆에 붙어 자보아야만 들리는 늑골의 숨소리를, 뜨거운.’ p. 362~363

작은 방에 한데 모여 하나의 이불을 품고 잠들었던 형제를 떠올린다. 이렇게 애틋하고 아련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이 책은 어렵다. 적확하게 말하면 김경주의 글은 버겁고 난해하지만 강한 끌림이 있다. 해서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쁘지 않다. '이 책은 어떤 이에게는 불필요해 보이는 느낌이 될 수도 있겠으나 어떤 이에게는 뭉클한 몸처럼 그리운 허구 같은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란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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