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모메 식당> 감독이 쓴 소설
영화 <카모메 식당> 감독이 쓴 소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9.13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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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기억과 소중한 일상 돌아보게

 

[북데일리] 알록달록한 천들이 쌓여 있는 정겨운 표지의 <히다리 포목점>2012. 푸른숲)은 영화 <카모메 식당>의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소설이다. 책은 히다리 포목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잊고 있던 기억과 소중한 일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모리오>, <에우와 사장> 두 편의 이야기는 모두 히다리 포목점이란 공간으로 이어진다. 첫 번 째 이야기인 <모리오>는 취향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주니공 모리오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를 좋아했다. 어머니가 남긴 조각 천을 모아두고 보물처럼 여겼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결혼한 누나는 집을 허물로 새 집을 짓는다. 그 과정에서 잊고 있던 재봉틀과 천 조각을 발견한다.

직장에서도 혼자 점심을 먹을 정도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모리오는 어머니의 재봉틀로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원하는 무늬의 천을 사기 위해 찾아간 곳이 바로 히다리 포목점이다. 포목점에서 모리오는 자신이 원하던 천을 발견한다. 어머니가 그랬듯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재봉질을 한다. 그 소리가 주는 평안함을 아는 아래층 소녀와 만나면서 그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경험한다. 자신에게 내재된 여성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를 만난 것이다. 자신이 원했던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찾아 나서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두 번째 이야기인 <에우와 사장>은 암 진단을 받은 시한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다. 의사인 요코는 직원의 결혼식에서 만난 에우와 동거를 시작한다. 에우는 이상하게 많은 시간 잠을 자야 하는 까닭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지만 요코와 그녀가 기르는 고양이 사장과도 잘 지낸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장을 돌보는데 동물병원에서 히다리 폭목점 아주머니의 권유로 고양이 상대라는 특이한 일을 시작한다. 에우란 이름이 고양이 이름에서 따와서 그런지 이상하게 고양이와 잘 지내는 것이다. 에우가 고양이들과 잘 지내는 건 그저 지켜봐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히다리 포목점 아주머니의 말처럼 말이다.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게 반드시 최선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잠자코 있어도 서로를 아는 사이라는 것도 지나치게 사이가 좋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지만 그만큼 관계없는 사람이라면 말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듣는 것이 당신의 일입니다.” p. 100

소중한 사람과 잘 지내는 일은 쉬운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때로 가까운 사이라서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더 크게 실망하기도 한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것을 알려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모리오와 에우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었다. 그러나 아래층 소녀와 요코를 통해 비밀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더 많을 말들을 요구했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잔잔하고 포근한 이야기다. 말하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내 모든 것을 들어주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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