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고독 속의 '오월의 봄'
침묵과 고독 속의 '오월의 봄'
  • 한지태 기자
  • 승인 2012.05.16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사에 유례없던 '5∙18'에 대한 담론

[북데일리] [책 속의 한 대목] 5∙18은 가히 세계사에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그토록 엄청난 규모의 잔학한 폭력이 국민들에게 백주에 도심에서 가해졌다는 점에서 우선 그러하며 더욱이 불과 인구 80만 명의 도시에서 무려 3개 여단 3,000명에 가까운 국군 최정예 공수특전단을 시민들이 싸워 한 때 물리쳤다는 점에서 또한 전대미문이라 할 것이다.

사상자 면에서 5∙18은 일방적인 시민 학살이었지만 반면 그곳에는 온 시민이 피와 눈물 등 한마음으로 융화된 공동체가 있었고, 한때 승리의 환호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자기 고장과 그들의 가치를 위해 초연히 죽음을 선택한 수많은 ‘칼레의 시민’들이 있었다.

5∙18은 데이터로 나타나는 사건의 규모로 보나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의 경험의 깊이로 보나 우리 현대사의 최대 사건이며 오늘 우리에게 느껴지는 그 결과와 의미 또한 가늠하기 어려운 무게를 갖는다.

이 모든 5∙18의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5∙18 담론의 가장 큰 부분은 침묵이었다. 5∙18은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었기에 감히 우리의 세치 혀로, 간사스런 붓 끝으로 담아낼 수 없고 담아내려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침묵은 여러 방면에서 부과되었다. 사건 초부터 군사정권은 철저히 보도를 통제했고, 보도가 시작된 후에도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공식적 발표 외에는 침묵을 강요했다. 군사정권은 1980년 6월, 5∙18을 일방적으로 규정한 후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모든 5∙18 유관 단체들과 관계자들에게 아무 말도 못하도록 탄압했다. (중략)

침묵은 광주를 탄압하고 방조한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다. 군사정부의 탄압은 차제하고 5∙18 당사자나 목격자 치고 언어의 좌절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광주 시민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습에 ‘이게 꿈이냐 생시냐’며 서로를 껴안고 치를 떨며 울부짖었다.

그들의 경험은 너무나 엄청나서 말하려 하면 가슴의 응어리에 숨이 막히고, 담배 몇 대를 피워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을 것이다. 어렵사리 꺼내고 나면 그 말은 너무나 싱거워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용기를 내고 증언했지만 그들이 겪은 현실에 비해 언어는 너무나 싱겁고 왜소했으리라. 말은 초라한 배신자로 전락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사건을 규정하는 폭력적 언어 앞에 5∙18의 경험은 찌그러지고 마는 것이 5∙18 담론의 현실이다. 아직도 광주와 5∙18은 고독과 침묵 속에 싸여 있다. -<오월의 사회과학>(최정운. 오월의봄. 2012), 35쪽~38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