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페이퍼=김재범 기자]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참 모호하다. 가깝지만 멀고멀지만 가까울 수밖에 없는 벽이 존재한다. ‘딸바보’란 단어가 유행이지만 아버지는 ‘무뚝뚝함’을 강조 받는다. 딸은 그런 아버지에게 커다란 벽을 느끼고 소통 불가의 답답함을 호소한다. 이들의 벽을 깨주는 것은 황당하게도 인공지능 로봇이다. 학습을 통해 진화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이 로봇은 성장을 한다.
인간의 감정을 통해 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배워나간다. 그리고 13년 전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린 한 사건이 등장한다. 그 사건은 아버지와 딸 그리고 인공 지능 로봇이란 어울릴 수도 뒤섞일 수도 없는 기묘한 관계를 경탄할 수준으로 뒤섞어 설득력이란 힘을 발휘한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이 소재를 이용해 수면 아래 파장의 흔들림을 잡아낸 ‘로봇, 소리’는 이 시대에 우리가 잊고 지내던 또 기억 속에 지워낸 그 어떤 것들을 잡아냈다. 그 흔들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온다. 그리고 끝내는 경험해 보지 못한 울림의 소리를 전한다.

딸을 잃어버렸다. 아빠 해관(이성민)은 짜증과 신경질로 아내(전혜진)를 책망한다. 온 동네를 뒤진 끝에 딸을 찾았다. 딸은 부모의 애달음은 상관없었다는 듯 아이스크림 가게 창문 너머에 매달려 있다. 해관은 딸 유주와 약속한다. ‘앞으로 이 아이스크림 가게가 우리 둘 만의 비밀 본보다’라고.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삶의 시간 속에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유주는 어느 덧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빠를 기다린다. 기다림의 시간이 흐를수록 아빠와의 만남 횟수도 점차 줄어든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살가운 ‘딸 바보’ ‘아빠바보’에서 멀고도 먼 부녀 관계로 성장한다. 그리고 딸 유주(채수빈)가 사라졌다. ‘비밀 본부’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딸은 사라졌다. 온 세상이 이제 아빠 해관에겐 ‘비밀 본부’가 돼 버렸다.
‘로봇, 소리’는 잃어버린 딸을 찾아 나선 아빠의 얘기다. 아빠는 미안하다. 딸을 잃어버린 죄책감이 크다. 그 죄책감은 미안함을 전달한다. 그 전달이 관객인지 딸인지 아내인지 그것도 아니면 딸인지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전달의 대상은 충분히 다르게 다가온다. 사실 아빠는 인정하기가 싫은 눈치였다. 딸이 자신의 곁에 없다는 사실 말이다.

어느 날 그의 앞에 이상한 물체 하나가 떨어졌다. 문자 그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잃어버린 딸이 ‘이 놈’처럼 어디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해관은 포기와 가까워질 때쯤 ‘이 놈’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어 본다. ‘이 놈’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판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말까지 하게 된 ‘이 놈’에게 해관은 ‘소리’란 이름을 선물했다.
‘소리’와 함께 10년 전 잃어버린 딸에게 한 발짝씩 다가서는 해관의 모습은 애틋하고 아련하다. 추억은 기억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그럼에도 해관에겐 기억도 추억도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다. 딸에 대한 기억을 쫓으면서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 그리고 그 곁에 자리한 ‘소리’의 모습은 묘한 울림을 전한다, 우리가 잊고 지낸 무엇에 대한 되새김을 전한다. 되새김이라기 보단 ‘망각’ 속에 갇힌 그것을 꺼낼 힘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해관이 바라보게 된 진실 속에서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오열하고 슬퍼한다. 사실 인정하기 싫었다. 그게 해관의 마음이고 아빠의 마음이고 아마도 관객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소리’를 통해 알게 된 해관의 마음이 너무도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리고 관객들도 응원을 하게 만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힘을 전달하고 또 받는 힘을 느낄 것이다. 그게 바로 영화 ‘로봇, 소리’에 등장하는 해관의 모습이고, 기묘한 외형의 ‘로봇 소리’가 가진 힘이다.

이 영화의 진실 됨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다. 스토리에서 주로 다루기 힘들었던 부녀 관계에 집중한 점이 첫 번째다. 가깝지만 멀고, 멀지만 가까워질 수 없는 부녀의 관계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진폭을 절묘하게 잡아냈다. 울림이 터짐으로 바뀔 ‘순간’을 잡아낸 감독의 연출력이 영화가 끝난 뒤 밀려오는 묘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두 번째가 로봇이다. 제작진이 2억원을 투자해 만들어 낸 로봇은 귀여운 외모와 기괴한 외형의 두 가지가 특징을 지닌다. 인공지능이란 영화적 생명력을 부여했지만 사실 ‘소리’는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이성민이 연기한 해관과 주고받는 연기의 전달력은 엄청나다. 감정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머리 부분의 연기(?)는 탄성을 넘어 경탄을 자아낼 정도다.

그 경탄의 힘은 이견이 없는 배우 심은경의 공이다. 기계음으로 변환된 심은경의 목소리는 여백과 강약의 조절을 통해 ‘소리’에게 생명력을 부여했다.
잊고 지낸 기억을 추억으로 바꿔주는 ‘로봇, 소리’의 매력은 영화가 전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고 매력일 것이다. 오는 27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