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페이퍼=이아람 기자]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으로 인해 거액의 피해를 입은 고객이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내 예금액 일부를 돌려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9단독 배정현 판사는 A씨가 B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 청구 소송에서 은행이 13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법원은 남성 명의의 정기 예금이 해지되는 과정에서 은행이 본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보이스피싱이 일상적인 범죄로 굳어진 만큼 고객 돈을 굴려 영업하는 은행들도 범죄를 막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다 해야 한다는 취지다.
A씨는 2014년 12월 12일 자신을 서울중앙지검 검사라고 소개하는 남성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A씨는 이 남성이 대포 통장 범죄에 연루됐다며 계좌번호와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 입력값에 관한 정보를 요구했고 A씨는 아무 의심 없이 말해줬다. 그 사이 A씨가 은행에 개설해 둔 4700만원짜리 정기 예금이 해지됐다. 이 돈은 A씨의 입출금 예금계좌로 옮겨졌다가 다음날 오전까지 19차례에 걸쳐 타인 계좌로 모두 분산 이체됐다.
예금이 거의 이체된 후에야 보이스피싱에 당했음을 깨달은 A씨는 이후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본인의사에 반한 정기예금 해지이니 예금 채권을 모두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더불어 적어도 은행이 해지 과정에서 본인 확인을 하지 않고 의심 거래를 막지 못했으니 손해를 물어낼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배 판사는 타인이 거래 지시를 했거나 A씨가 사기를 당해 거래 지시를 했더라도 은행은 공인인증서나 OTP 번호의 일치 여부를 확인한 후 계약을 해지한 만큼 A씨가 예금 채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은행이 해지 처리 과정에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규정된 전화나 대면 방식으로 본인 확인을 하지 않은 점에서는 과실은 인정했다. 당시 은행은 A씨에게 예금 해지 사실을 문자로만 통보했다.
배 판사는 A씨 예금이 단기간에 수 차례에 걸쳐 이체된 것은 금융위원회가 ‘이상 금융거래’의 예로 드는 경우인데도 은행이 이를 막기 위한 임시 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A씨가 보이스피싱으로 날린 4700여만원을 모두 손해액으로 인정했다.
다만 이미 보이스피싱 범죄가 널리 알려졌음에도 A씨가 주의를 게을리해 인증서 번호 등을 누설한 책임도 크다며 은행 책임을 40%로 제한했다. 법원은 A씨가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 환급금으로 570여만원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해 최종 배상액은 1천300여만원으로 정했다. A씨는 C은행을 상대로도 같은 소송을 내 910여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다른 시중은행 두 곳을 상대로 낸 소송은 현재 심리 중이다. 법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이상 금융거래’를 감지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만 더 보완·구비하면 지금보다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