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 일이?] 명성황후 믿는 도끼에 발등?
[책속에 이런 일이?] 명성황후 믿는 도끼에 발등?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0.20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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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곁에 잠들지 못한 왕의 여인들>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신분상승. 누구나 기회가 있다면 반기지 않을까. 영친왕으로 더 잘 알려진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의민황태자의 어머니. 순헌황귀비 엄씨야말로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은 여자다. 6세에 궁인으로 입궁해 고종의 후궁이 되어 황태자를 낳아 지금은 왕을 낳은 왕의 어머니들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사실 엄씨는 명성황후 민씨의 시위상궁이었다. 자신이 데리고 있던 상궁이 어떻게 남편의 여인이 되었을까. 알고 보니 엄씨는 나이가 든 데다가 못생긴 궁녀에 불과했다. 그런 엄씨에게 고종이 눈독을 들이리라 명성황후 민씨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고종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호위하는 시위상궁으로 민씨가 직접 택했기 때문에 배신감이 컸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엄씨가 승은을 입고 고종의 처소에서 치마를 뒤집어 입고 나왔다. 그야말로 명성황후 민씨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크게 찍히고 말았던 것. 1886년(고종 23년) 그녀의 나이 33세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임금과 동침한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승은을 입으면 동침한 방에서 치마를 뒤집어 입고 나오는 것이 관례였다.

<왕의 곁에 잠들지 못한 왕의 여인들>(문예춘추사.2015)에 따르면 그 모습을 보고 대궐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랐고, 누구보다 그녀를 믿고 있었던 명성황후 민씨의 진도는 극에 달했다. 고종의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 직후 명성황후 민씨의 명으로 그녀는 궁궐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 후 10년. 명성황후 민씨가 끔찍하게 살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5일 만에 고종은 쫓겨났던 엄씨를 불러들였다. 일본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1896년(고종 33년) 음력 2월 11일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고종과 순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킨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장본인도 엄씨다. 영친왕 이 은은 낳은 때가 그녀의 나이 44세 고종의 나이 46세였던 것을 보면, 고종은 진정 엄씨를 사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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