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과감하게 사용한 분홍색 표지에 하늘로 구불구불 뻗어 올라간 모양은 흡사 덩굴 같기도 아지랑이 같기도 하다. <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남해의봄날.2018) 표지 속 기하학적 형상을 단박에 알아보았다면, 틀림없이 남인도 바닷가 마을에 자리한 작은 출판사 타라북스를 알 터다.
표지는 타라북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그림책 <나무들의 밤>에 등장하는 ‘덩굴나무’다. 얽혀 있지만,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는 듯 옭아매지는 않은 모습은 인도 중부 곤드족의 미술이다.
곤드 미술은 묘사보다 상징적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곡선과 복잡하게 뒤얽힌 기하학적 무늬가 특징이다. 특히 그들의 미술에는 자주 나무가 등장하는데 옛날부터 숲속에서 살아와 나무가 삶의 중심이라 여겨서다. 타라북스는 이처럼 저명한 작가나 예술가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범한 재능을 찾는다.
책은 타라북스 출판사 사람들을 2년간 심층 취재해 그들이 생각하는 책과 노동, 삶의 가치를 담았다. 왜 남인도 작은 바닷가 마을 작은 출판사가 심층 취재 대상이 된 걸까. 타라북스가 출판한 책은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볼로냐도서전 라가치상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그림책상을 휩쓸며 이목을 끌지만, 무엇보다 취재 대상이 된 이유는 타라북스의 가치관 때문이다.
타라북스는 자신들의 그림책이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도 규모를 크게 만드는 데 별 관심이 없다. 핸드메이드라는 작업 특성도 있지만, 대량생산이 주는 이익보다 스무 명 정도의 직원과 충분히 의사소통하며 책의 질, 동료들 간의 관계, 일과 사람의 관계성을 유지하는 데 가치를 두어서다.
이런 타라북스의 정체성과 신념은 책을 만드는 구성원들의 자부심이 되어 아름다운 책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난다. 그래서 타라북스에 그림책을 주문하면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9개월이다. 20년간 만들어 온 42권의 흥미로운 책과 그들의 일과 삶을 통해 ‘작게 존재함’의 의미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