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페이퍼=김재범 기자] 알파고다. 인공지능이다. ‘아니다’란 주장도 있다. 알파고는 존재하는 테크놀로지가 점령 불가능하다는 바둑의 세계에서 인간계 최강 프로 바둑 기사를 상대로 내리 3판을 이겼다. 설사 계산기에 불과하다고 해도 알파고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급변했다.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인류의 유토피아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기대된 기술이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알파고’가 인공지능의 첫 출발이란 점에서 인류의 기대는 커지고 있다. 반대급부도 있다. 가상현실의 세계를 그려내는 영화 속 인공지능은 대부분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을 그린다.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외날(유토피아)의 검만은 절대 아니란 점을 들고 있다.
◆ 인공지능,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선사할 것인가?
이스라엘 히브리대 사학과 교수 유발 하라리는 “2100년이면 현생 인류는 사라질 것이다”는 충격적인 예언을 했다. 인간이 기계에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했던 분야인 ‘바둑’마저 인공지능으로 불리는 ‘알파고’가 사실상 승리를 거둔 뒤 공개된 내용이다.
바둑의 경우 일반적으로 경우의 수가 ‘10의 170제곱’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상 무한대에 가까운 수치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직관력이 ‘바둑’이란 스포츠의 핵심이 된다. 이는 자가 판단능력이 없는 기계에게는 불가능한 수치다. 하지만 알파고가 이 선입견을 깼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란 예언은 이 부분에서 출발한다. 바로 자가 판단능력이다. 알파고의 경우 현재까지 논란이 많다. 1202대의 컴퓨터가 연결된 온라인 기반의 계산기란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논란을 뒤로 하고서라도 바둑이란 미지의 영역에서 기계가 인간을 앞선 것은 사실이다.
영화 속 기계와 인간의 역전 현상을 만들어 낸 대표작은 ‘터미네이터’다. 특히 인공지능 ‘스카이넷’은 자체 판단 능력을 실현시키면서 인류를 적으로 규정했다. 기계가 인류에게 뒤지는 단 두 가지 요소는 ‘육체’와 ‘생각’이다. 이 두 가지에서 ‘터미네이터’ 속 ‘스카이넷’은 살인 병기 ‘터미네이터’를 통해 육체를 넘어섰고,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생각’을 손에 쥐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그린 미래는 그래서 인류의 멸종이었다. 편리함을 추구한 이른바 통합시스템 구축의 다른 이름 ‘스카이넷’은 반대로 인류의 적이 된 셈이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인공지능의 가장 극단적인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린다. 거대한 매트릭스 세계 자체가 가상현실이며 인간이 기계의 동력을 전달하는 건전지에 비유된다. 발전된 인공지능은 스스로가 창조주이자 신으로 군림하게 된다. 판단 능력을 넘어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극단의 부작용이란 한 부분을 지적한다.

◆ 영화적 판단은 폐단, 실제는?
앞선 두 작품 외에도 인공지능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담은 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영화 속 공통의 분모는 의외로 간단하다. 이미 설명한 '판단'이다.
기계는 인간의 도구이며 보조제 역할일 뿐이다. 입력을 통해 출력을 행사하지만 스스로가 이 작업을 이뤄낼 수는 없다. 자체 판단이 불가능한 단순히 기계적 수치를 산출하는 도구일 뿐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생각을 더하게 되면서 ‘지능’의 개념으로 발전한다.
영화 ‘아이, 로봇’은 미래 사회 인공지능이 만들어 낼 가장 현실적인 폐단을 그린 작품이다. 인간을 대신한 가사 로봇 ‘NS-5’. 이를 생산하는 거대 기업의 비리. 그리고 ‘NS-5’의 핵심 기술을 가진 한 과학자의 살인 사건. 미래 사회를 통제하는 거대 기업의 실체인 ‘인공지능’의 소름끼치는 자체 판단은 관객을 압도한다. 생각을 하는 로봇과 생각하는 인공 지능은 결국 인류의 명과 암을 고스란히 담아낸 모습이었다. 인간조차도 판단의 근거에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아이, 로봇’은 이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기계의 판단이 가져올 혼란이었다.
인공지능이 판단 능력을 보유하게 되면 벌어지는 대표적인 논란은 ‘인격권 부여’다.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 받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저 생각을 하는 로봇에 불과한지 말이다. 고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바이센테니얼 맨’은 그 지점을 풀어낸 작품이다. 가사 로봇 ‘NDR-114’는 ‘앤드류’란 이름을 갖고 있다. 이 로봇은 조립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로 인해 기계가 가져선 안될 ‘호기심’과 ‘지능’이 생겨 버렸다. 로봇은 자아를 느끼고 급기야 그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 마지막 ‘앤드류’의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은 ‘인공지능’을 통해 인류가 생각해야 할 새로운 영역의 단계를 언급하며 막을 내린다.
기계 ‘알파고’가 ‘인간’ 이세돌 9단을 이겼다. 이 9단은 “이세돌이 진 것이다. 인간이 진 것이 아니다”고 담담해 했다. 이후 3연패의 이 9단은 귀중한 첫 승리를 챙겼다. 인류는 환호했다.
아직은 기계다. 하지만 머지않아 ‘알파고’의 진화체는 바둑의 영역까지 완벽하게 점령할 것이다. 그것이 '디스토피아' 혹은 '유토피아'인지는 도달한 뒤 밝혀질 일이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