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 살다 땅속에 묻히는 것도 결국 한판의 축제이지 않던가.”
작가 홍구보의 말이다. 지금이야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삼일장이 일반적이지만 본래 우리 상문화는 절차가 까다롭고 지역색이 분명하다. 작가는 <개보다 못한 시인>(북스토리. 2010) 중 ‘송정마을 이야기’편을 통해 '상'의 절차와 분위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송정마을에 상갓집이 생기면 전 동네에 작은 축제가 벌어졌다. 아낙네들은 집집마다 된장을 조금씩 퍼 와 양푼에 모았다가, 큰 가마솥에 미역과 같이 넣어 미역된장국을 성설 끓여 상객에게 대접했다. 또, 귀한 쌀을 집집마다 조금씩 부조해 이밥 대신 흰죽을 푸짐하게 쑤어 장사 기간 내내 대접했다. 동네 처녀애들도 뒷방에 모여 흰 종이를 가위로 오려 꽃을 만들어 대나무로 짠 틀에 꽂았다. 이 틀을 관 위에 올리면 꽃상여가 되었다.
예전에는 주로 오일장과 칠일장을 지냈다. 손 없는 방향의 마당에 토렴을 만들어, 삼베 천막을 마당가에 치고 상객을 맞았다. 글 읽은 선비 집안은 광목이나 비단에 고인에 대한 애석함을 시로 써 부조하였다. 가까운 집안사람들은 집에서 담근 농주를 한 통씩 갖고 오거나 장작을 한 짐 가득히 해왔다. 대다수의 이웃은 한 되돌이 정종을 사 들고 왔다. 이도저도 아니면 품팔이 부조도 많이 했다.
배고픈 시절이라 장사 내내 상갓집에 기거하며 업무를 분담해 상객을 치렀다. 취객이나 걸인들도 잘 처리하는 강단 있고 말 잘하는 도색이 총책임을 맡았다. 신나는 품팔이는 상두꾼 노릇이었다. 선소리꾼이 상여에 오르면 상여꾼들은 이마에 수건을 두르고 들메끈을 단단히 조아려 어깨에 올렸다. “너호 너호 너기자 넘차 너호”라며 상여꾼이 소리하면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며 사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상여가 동네를 벗어나기 전에 꼭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고인의 처것집이나 사돈댁, 또 계원들이 망인 마지막 가는 길목에 음식과 술을 준비해 노제를 지내주었다. 이때 꼭 제문을 읽었는데, 여자 상주를 곡하게 하는 대목이 필수였다. 여자 상주가 먼저 울기 시작해야 애도의 물결이 넘쳤기 때문이다.
노동요를 부르며 장지에 도착하면 지관의 지시에 따라 산신제를 지내고, 무덤자리를 파고 하관을 한다. 맏상주를 시작으로 모든 상주가 “취토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삽으로 흙을 세 번씩 관에 뿌렸다. 봉분이 올려지고 흙을 다져 떼를 입히면 선소리꾼이 ‘덜구질 노래’를 불러 흥을 더한다. 봉분이 다 되면 상주는 봉분제를 지내고, 상두꾼은 꽃상여를 태웠다. 사나흘 울기만 했던 상주도 하산할 즈음엔 웃음기를 보이고 일가친척들도 우스개로 상주에게 덕담을 던지기도 했다. -본문 중에서, 일부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