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장] 입안에서 통렬한 서늘함이...
[명문장] 입안에서 통렬한 서늘함이...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05.28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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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30도가 웃도는 요즘 대체 봄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한낮 뙤약볕 아래 있다 보면 갈증이 울대를 타고 올라온다. 시원한 음료도 그때뿐이다. 이토록 심신이 늘어질 때면 시원한 수박화채 한 그릇이 아쉽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푸른숲 .2012)의 박찬일 쉐프도 얼음을 배달하던 소년 시절이 있었다. 그가 안내하는 시원한 추억으로 더위를 피해 보는 것도 좋겠다.

‘비닐봉지가 없던 때 새끼줄로 묶어준 얼음을 건네받으면 나는 줄달음을 쳤다. 얼른 머리껍질이 벗겨질 것 같은 ‘쩡한’ 얼음 수박화채를 먹겠다는 일념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녹기 전에 집에 당도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아무리 새끼줄로 단단히 묶어도 줄줄 녹아버리면 별 무소용이었다. 그렇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달려서 집에 가면 외숙모는 수박을 다 떠서 커다란 양은 다라이(함지)에 담아 놓고 계셨다. 참, 어떻게 살아온 세월인가 싶어지는, 그런 막막한 기억이 떠오른다.

화채를 만들어 먹는 이유는 또 하나가 있었다. 식구는 많고 수박은 적으니 고루 한 대접씩 돌리려면 화채가 제일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간 얼음은 가장 큰 바늘과 망치를 동원해서 잘게 쪼갰다. 그 부정형의 얼음이 화채의 맛을 돋웠다. 얼음은 화채의 보조가 아니라 주인공이었다. 빙산의 날카로운 일각처럼 부서진 얼음 조각은 수박의 사각거리는 맛에 어울려 더위를 지그시 눌렀다. 입안에서 통렬한 서늘함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아이스커피나 얼음을 쓰는 무엇을 할 때면 얼음에 신경을 집중한다. 마치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처럼 날카로운 예각의 얼음이, 비수 같은 날이 들어 있어야 제맛이 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른다고 다 떡이 아니고, 안친다고 다 밥이 아니다. 수정처럼 투명하고 날카로운 얼음 비수를 가져야 진짜 얼음의 맛이 난다.’ (46쪽~47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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