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뿜어내는 빛과 소리가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철이 뿜어내는 빛과 소리가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 임채연 기자
  • 승인 2026.11.02 14: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17일 한벽원미술관에서 ‘불의 사제’전 여는 최태훈 작가
최태훈 작가

 [화이트페이퍼=임채연 기자] 새벽까지 이어진 작업이 끝나면 커피의 쓰임도 달라진다. 잠을 깨우기 위해 마시던 커피가 이제는 잠들기 위한 음료가 된다. 조각가 최태훈이 오랜 밤을 함께 보낸 ‘친구’는 철이다. 자르고 두드리고 녹이고 붙이며 다투다가도, 다시 쓰다듬고 다듬으며 온기를 나누는 상대다.

오는 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삼청동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불의 사제(The Priest of Fire)’는 그 오랜 관계를 돌아보는 자리다. 10년 만의 개인전에서 신작 7점을 선보이는 작가는 철의 강인함 안에 자신이 품어온 나약함을 담는다. 불에 패이고 구멍이 난 표면에는 물질과 힘겨루기해온 시간, 그리고 뜻대로 설명되지 않는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겹쳐 있다.

“철은 긴 시간 동안 작업실에서 함께 밤을 새우며 말동무가 되고 영감의 원천이 된 친구다. 철로 인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지금의 나 역시 그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에게 철은 작업의 재료이면서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형성한 상대다. 그 우정에는 순탄함보다 충돌의 시간이 깊이 배어 있다. 자르고 두드리며 거칠게 힘을 겨루다가 다시 표면을 쓰다듬고 다듬는다. 작가는 이 반복 속에서 철과 온기를 주고받는다. 차가운 금속에 온기가 생기는 순간은 오랜 노동과 접촉을 통해 찾아온다.


― 오랜 시간 다뤄온 재료인데도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는가.

“철의 속성을 조금 알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완강한 저항을 만난다. 하루종일 씨름에도 꺾이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녀석이다. 익숙해졌다는 확신은 오래가지 않는다. 형태를 해체하고 다시 만드는 동안 철은 번번이 자신의 성질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 고집과 우직함이 밉지 않다. 오래된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은 여기에서 드러난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어도 다시 마주하는 것. 작품은 그러한 만남이 반복되며 만들어진 결과다.”

― 강한 재료인 철에 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철의 거친 성격을 이겨내며 그 안에 나약함을 담아보려 한다. 단단하고 무거운 재료를 통해 연약한 내면을 드러내려는 시도다. 그러나 관객은 종종 작가의 의도와 다른 의미를 발견한다. 그 해석에 동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또다시 철에게 져버렸다는 감각을 느낀다. 내가 담으려던 나약함보다 철의 강한 인상이 먼저 전달되는 순간이다. 작품에는 작가의 의도와 물질의 성질, 관객의 해석이 함께 개입한다. 그 사이에서 의미는 매번 새롭게 형성된다.”

― 자신의 작업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인가.

“나는 여전히 그 녀석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다. 아니, 매번 소개하지만 언제나 완벽히 맞았던 적이 없다. 오랫동안 한 재료를 다뤄온 작가의 솔직한 망설임이라고 해석해 주면 감사하다. 수십 년의 경험이 철에 대한 최종적인 설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세상이 변하면 철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같은 작품에서도 이전과 다른 의미가 드러날 수 있다.

작가는 그 불일치를 안고 작업을 이어간다. 조각은 철을 완벽히 설명하기 위한 답안보다, 아직 알지 못하는 면을 다시 만나는 과정에 가까워진다. 철을 소개하는 일은 나의 현재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대에도 철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철이 뿜어내는 빛과 소리가 여전히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그 감각은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에 비유할 수 있다. 오랫동안 싸우고 화해하며 같은 시간을 견뎌온 관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끌림이다. 나의 눈앞에서 튀는 불꽃과 소리, 손에 전해지는 저항, 쉽게 끝나지 않는 노동이 나를 다시 작업실로 이끈다. 철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창작의 동력인 셈이다.”

― 철에서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는가.

“철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약속한다. 완강하게 저항하는 물질을 마주하는 동안 나의 고집과 한계,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나약함도 만나게 된다. 철은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작업은 계획을 구현하는 과정인 동시에 나를 다시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이번 전시의 거친 표면과 열린 틈은 이러한 고백을 조형적으로 읽게 한다. 불이 지나간 흔적은 철의 견고함을 흔들고, 구멍은 안과 밖을 연결한다. 작가가 철 안에 담으려 했던 나약함은 그 손상된 표면을 통해 감각될 수 있다. 상처를 품은 존재의 분신이라는 해석도 이 지점에서 가능해진다.

미술평론가 최태만은 최태훈의 작업을 불을 통한 정화와 몰입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전시 제목 ‘불의 사제’ 역시 그 해석과 맞닿아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