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정보가 퇴적된 이창 작가의 ‘데이터 회화’
시간과 정보가 퇴적된 이창 작가의 ‘데이터 회화’
  • 임채연 기자
  • 승인 2026.08.07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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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2일~12월 11일 대구 갤러리 어바웃 초대전

[화이트페이퍼=임채연 기자] 이창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형식의 변화가 아니다. 하나의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질문에서 출발한 탐구는 재료와 조형 언어를 끊임없이 확장하며 오늘날 물질과 정보, 기억과 데이터의 관계를 탐구하는 동시대 회화로 이어졌다. 도자기에서 시작된 형상은 구조와 선, 획으로 해체되고 다시 숫자와 데이터, 기억으로 확장되면서 마침내 검은 층 아래 시간과 정보가 퇴적된 회화라는 새로운 조형 언어에 도달한다.

이러한 작업의 변화와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이창 작가 초대전이 9월 12일부터 12월 11일까지 대구 갤러리 어바웃에서 열린다.

작업의 출발점은 도자기였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구상회화의 방식으로 도자기를 사실적으로 재현했지만, 시력 저하라는 신체적 변화는 기존의 재현 방식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작가는 이를 표현의 한계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으로 전환했다. “그릴 수 없다면 실제 도자기를 작품 속에 넣으면 어떨까”라는 질문이었다.

직접 도자기를 제작해 화면에 배치하면서 회화는 평면을 벗어나 입체와 공간으로 확장됐다. 그리는 대상이었던 도자기가 실제 물질로 화면 안에 들어오면서 작품은 ‘이미지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에서 ‘실재와 이미지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실재하는 도자기를 화면에 가져오는 것만으로 탐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점차 도자기의 외형보다 그 존재를 성립시키는 구조에 주목했다. 그릇은 무언가를 담는 존재이고, 담기 위해서는 먼저 비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유는 형태와 장식을 걷어내는 과정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도자기의 구체적인 형상은 사라지고 그것을 둘러싼 구조와 여백이 남았다.

반복되는 사각의 격자는 다도방의 선반이나 도시의 건축 구조를 연상시킨다. 이때부터 화면은 더 이상 특정 사물을 보여주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와 질서를 구축하는 하나의 구조로 변화한다.

격자는 다시 가장 기본적인 조형 단위인 ‘선(Line)’으로 환원된다. 작가는 작은 패널들을 연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거대한 화면으로 구조를 확대하고, 돌가루와 테이프, 긁어내기 등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수많은 선을 구축한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본 선은 단순한 기하학적 선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거친 표면과 손의 움직임, 도구가 지나간 흔적과 반복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선은 점차 ‘획(Stroke)’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즉 선이 공간을 나누는 기하학적 요소였다면, 획은 작가의 신체와 행위, 시간이 응축된 하나의 물질적 사건인 셈이다.

획을 더욱 확대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조형 언어인 ‘숫자’가 등장한다. 숫자는 의미를 설명하는 언어와 달리 인류가 세계의 양과 질서를 체계화하기 위해 만들어온 가장 오래된 기호 가운데 하나다. 작가에게 숫자는 계산을 위한 도구인 동시에 형태와 리듬을 가진 이미지였다. 획은 숫자가 되고, 숫자는 다시 화면을 구성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작업은 동시대의 디지털 문명과 접속한다. 오늘날 인간의 사진과 문자, 영상과 음성, 기록과 기억은 데이터로 변환돼 저장된다. 숫자는 더 이상 단순한 계산 기호가 아니라 세계를 정보로 변환하고 저장하는 디지털 문명의 기초 언어가 된 것이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숫자를 ‘읽어야 하는 기호’에서 ‘기억을 저장하는 구조’로 전환한다. 화면 역시 이미지를 보여주는 장소에서 수많은 정보와 시간이 축적되는 일종의 기억 장치로 변화한다.

최근 작업을 지배하는 두터운 검은 층은 이러한 탐구가 집약된 지점이다. 검정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다. 여러 차례 물질을 덧입히고 긁어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시간의 지층이다. 그 아래에는 숫자와 문자, 코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희미하게 남아 있고 화면 가장자리에서는 감춰진 데이터의 흔적이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검은색으로 ‘덮는 행위’는 지우는 것과 같지 않다. 오히려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고 어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과거의 흔적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채 새로운 기억 아래 중첩된다. 검은 층은 바로 이러한 삭제와 보존, 망각과 기억 사이의 역설적인 상태를 물질적으로 드러낸다.

화면을 이루는 숫자와 문자 역시 더 이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다. 의미에서 벗어난 문자와 숫자는 반복과 배열을 통해 리듬과 밀도를 형성한다. 텍스트가 이미지가 되고, 데이터가 물질이 되며, 정보가 회화적 마티에르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이 지점에서 이창의 작업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두 개의 시간 체계를 한 화면 안에 중첩시킨다. 데이터가 순간적으로 저장되고 복제되는 디지털의 시간과, 칠하고 덮고 긁어내는 신체적 노동을 통해 축적되는 회화의 시간이 충돌하면서 공존한다. 디지털 정보를 손의 노동으로 다시 물질화한다는 점이 최근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반복과 수행, 물질성을 주요한 조형 언어로 삼아온 한국 단색회화의 미학과도 맞닿아 있지만 그 내용은 동시대적으로 이동한다. 반복의 행위가 자기 수행이나 물질 탐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숫자와 코드, 데이터와 기억이라는 디지털 시대의 문제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창의 작업사를 관통하는 것은 특정한 형식이 아니라 끊임없는 ‘환원과 확장’의 과정이다. 도자기의 형상을 걷어내자 구조가 남았고, 구조를 환원하자 선이 나타났다. 선을 확대하자 획이 되었으며, 획은 숫자로, 숫자는 데이터로, 데이터는 다시 기억과 시간의 문제로 확장됐다.

그래서 최근의 검은 화면은 작업의 종착점이라기보다 그동안 축적된 조형적 질문들이 겹겹이 압축된 하나의 지층에 가깝다. 회화는 더 이상 대상을 재현하는 창이 아니다. 기억이 퇴적되고 정보가 물질로 변환되며 시간이 쌓이는 장소다.

검은 물질 아래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데이터의 흔적. 이창의 회화는 그 흔적을 통해 모든 것이 데이터로 저장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질문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정보를 보존하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덮고 지우고 다시 만들어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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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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