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항공·물류 발전에 혁혁한 공...'갑질 논란'의 나비효과도"
[화이트페이퍼=김예솔 기자] 항공업계의 거목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70)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8일 대한항공은 이날 새벽 0시 16분 조 회장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폐질환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의 장남으로 1974년 대한항공에 첫 발을 디딘 이후 국내 항공산업을 세계적인 반열에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 ‘대한항공 50주년’ 세계 1등 항공사로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이 이끈 45년 동안 국적 항공사에서 전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발돋움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후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대한항공 수장이 된 2000년대부터는 대한항공을 직접 전두지휘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일궜다.
대한항공은 1970년대 태평양·유럽·중동에 하늘길을 열며 국가 산업 발전에 견인했으며, 1980년대에는 서울 올림픽 공식 항공사로서 세계를 누비며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2004년에는 대한항공이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항공수송통계 국제항공화물수송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19년 동안 이 부문에서 부동의 1위였던 독일 루프트한자항공을 제치고 1위 자리에 올라 세계 항공업계의 이목을 한껏 받았다. 이후 대한항공은 2010년까지 6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켜왔다.
1969년 조중훈 창업주가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던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50주년을 맞은 올해로 166대로 증가했으며, 일본 3개 도시에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늘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성장했다.
이처럼 대한항공이 눈부신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조 회장은 탁월한 리더십과 안목이 뒷받침됐다는 평가다.
그간 1997년 외환위기, 2001년 9.11테러 등의 악재에도 꿋꿋이 견뎌냈던 대한항공이지만, 2010년 이후부터는 총수 일가의 ‘갑질 문제’로 논란의 중심의 서기도 했다.
2014년에는 조 회장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물컵 갑질'과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 폭행’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어 배임·횡령·탈세 의혹으로 총수 일가가 잇따라 입방아에 오르면서 대한항공은 '오너 리스크'로 휘청거리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나비효과가 되면서 지난달 27일 조 회장은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 실패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후 폐질환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열흘 뒤인 8일 조 회장은 미국 LA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
■ ‘조원태 체제’로 전환될 듯...'오너리스크' 등 과제도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한진그룹과 핵심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은 후폭풍을 맞이하게 됐다. 조 회장은 명실상부한 한진그룹 총수로, 그동안 그룹 경영에 관한 사안을 모두 직접 챙겨왔기 때문이다.
현재 한진그룹은 조 회장의 급작스런 별세에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으며,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진행해 항공 등 안전과 회사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일단 그룹 각 계열사 사장단이 전문적인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경영 판단에는 큰 혼선이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정기 주총에서 주주들의 견제에도 조 회장 측근인 석태수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했고, 조 회장 측 지분을 통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의 공백으로 장남인 조원태(44) 대한항공 사장의 경영체제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특히, 조현아 전 부사장과 조현민 전 전무 등 조 사장의 형제들이 잇따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경영 일선 복귀가 쉽지 않은 만큼 조 사장으로의 경영승계가 더욱 속도를 낼 공산이 크다.
다만, 조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지분 상속 및 승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상속세와 지분 이양 등 숙제를 풀어야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는 지적에서다.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구조를 보면 조 회장 일가의 우호 지분이 28.95%다. 이 중 조 회장이 17.84%를 보유하고 있고, 조원태 사장 2.34%, 장녀 조 전 부사장 2.31%, 차녀 조 전 전무 2.30% 등으로 조 회장 자녀들의 지분은 그리 크지 않다.
상속세율을 50%로 가정할 때, 한진칼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0.03%이고, KCGI 및 국민연금의 합산지분은 20.81%여서 단순 계산으로도 조 사장 측이 최대주주 지위를 위협받을 가능성도 있다.
조 사장은 2003년 한진정보통신으로 입사해 2016년 대한항공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부친과 함께 회사 경영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조 회장의 그림자 아래 내세울 만한 경영성과가 없었다는 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게다가 각종 갑질 논란으로 총수 일가가 경영권 압박을 받는 상황 속에서 KCGI와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강화 기조가 이어지는 것도 부담 요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은 45년간 대한민국 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한 선구자"라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