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스런 에코의 동화` 에코는 우주인?
`실망스런 에코의 동화` 에코는 우주인?
  • 북데일리
  • 승인 2005.12.1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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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웅진닷컴. 2005)이라는 책이 있어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어린이를 위해 쓴 ‘유일한’ 책이라고 하더군요.

`에코`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까닭일까요?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썼다는 책 치고는 실망스러운 심정을 달랠 길 없더군요.

대학시절, 다양한 기호들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던 기호학자 에코의 이름에 끌려 ‘덜컥’ 책을 사고 말았는데 책 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만들더군요.

어린이 눈높이로 읽더라도 너무나 ‘허접한’ 구성이어서 `번역이 잘못된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그 왜 있잖아요. 외국의 유명한 시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요. 억지서생 책장 넘기듯 그와 유사한 경우가 아닐까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답니다.

폭탄과 장군,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뉴 행성의 난쟁이들이라는 3가지 이야기는 전쟁반대와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 환경문제 등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다루고는 있더군요. 그러나 책 속에는 인류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한 에코 특유의 날카로운 직관과 위트가 녹아있진 않았어요.

원자폭탄을 모아서 돈을 벌려고 하는 장군의 최후가 도대체 평화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모자란 감이 있었고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명의 이기를 매연과 교통체증, 쓰레기 등 단편적 부분만 언급하면서 ‘환경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이지 구시대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다분히 유치한 어투의 이야기들은 어린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너무나 부족했답니다.

불현듯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識者)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으로 시작되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예술과 같은 웃음을 부정한 중세의 불합리한 종교관과 그를 부정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훔쳐 읽은 수도사들.

에코가 어린이들을 위해 쓴 `유일한` 책을 읽으며 중세 수도사들이 흘렸던 `일탈적 실소`를 금할 수 없었어요.

혹시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을 쓴 움베르토 에코는 우주인이 아닐까요. 지구 밖 어딘가에 존재할 지 모르는 우주인 어린이는 지구 어린이의 정서와는 분명 다를 테니까요.

(일러스트 = 에우제니오 카르미) [북데일리 이재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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