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에게 밥사준 `가난의 시인`
정주영 회장에게 밥사준 `가난의 시인`
  • 북데일리
  • 승인 2005.12.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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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본선 심사에 두 차례나 오르고 세계 200대 시인의 반열에 오를 만큼 한국 문단을 이끌어온 고 구상 선생(1919~2004)은 올곧은 성품과 구도자적인 삶을 살다간 우리 시대 큰 스승이다.

최근 KBS3 라디오 ‘명사들의 책읽기’에 장애우문학지 <솟대문학>의 발행인 방귀희 작가가 출연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건넨 구상 선생을 반추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없는 사람들의 삶을 보듬아 온 구상 선생은 이중섭 화백의 그림을 판 돈 1억 원을 이웃을 위해 선뜻 내놓았고, 소천하기 전에는 장애우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솟대문학상 기금으로 2억 원을 쾌척했다.

구상 선생의 애정을 밑거름으로 장애인문학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기고 있는 <솟대문학>은 올해 창간 15주년을 맞이해 현재 60호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매년 20명 정도의 장애인 문학가를 배출하는 산파역할을 하고 있다.

방귀희 작가는 ‘허튼 짓 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지금까지 <솟대문학>의 맥을 이어온 장본인. 하지만 그는 “‘구상 선생이 솟대문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천군만마의 힘을 발휘하게 했다”고 방송을 통해 드러냈다.

또한 방 작가는 구상 선생을 “장애인 문학의 위대한 스승”이라며 “솟대문학의 가치를 한결같이 인정해주고 진심으로 사랑해 준 분”이라고 회고했다.

이날 방송에서 방귀희 작가가 소개한 구상 시인의 생애가 담긴 <예술가의 삶 9>(혜화당, 1993)는 시인의 어린 시절 문학적 천진함이 돋보이는 대목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어머니로부터 천자문이며 고시조, 신소설, 중국소설을 어렸을 때부터 접한 구상 시인은 네 살 때 이미 천자문을 외웠고, 학교에서 조선어과목이나 글짓기, 이야기 시간이 그에겐 요샛말로 거저먹기나 나름없었던 것.

구상 선생은 곧잘 ‘사람이 공기나 물만 마시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온 세상 내 것 네 것 없이 골고루 잘 살기 위해서 돈을 없애야 한다’, ‘염소 뱃속에 기계장치가 있어서 검정콩알이 동글동글하게 나온다’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발휘해, 반 친구들에게 웃음을 사기도 했다.

한편, 지난 5월 구상 선생의 1주기를 기념해 펴낸 추모문집 <홀로와 더불어>(나무와숲)에는 그와 교류한 문인, 학자, 정치인, 종교인의 글 102편이 담겨있다. 이 가운데 구상 시인의 올곧은 성품을 알 수 있는 일화가 나온다.

구상 선생과 사형수의 아버지 박삼중 스님이 함께 식사하던 때의 일이다. 맨날 식사 대접만 받던 스님이 벼르고 별러 어느 날 “오늘은 제가 냅니다”라며 식사를 하는데, 구상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인 정주영 회장도 한턱낸다고 왔다가 밥 얻어먹고 갔다”면서 “스님이 왕 회장보다 돈이 많으면 계산하십시오”라고 응수했다.

구상 선생의 제자들도 그에게 점심 식사 한번 대접할 수 없을 만큼, 그는 ‘까탈스러울’정도로 누구에게 신세지고 넘어가는 일을 좀체 하지 않았다.

평생을 참다운 자유인으로, 성자와도 같은 삶을 살다간 구상 시인. 이해 타산적인 우리네 삶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면, 그의 따뜻하고 올곧은 생을 따라가 볼 일이다. (사진 = 출처 구상문학관 www.chilgok.go.kr/localuser/saemaeul/kusang)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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