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며느리 역할은 그만둘 수 없나' 도발 질문
'왜 며느리 역할은 그만둘 수 없나' 도발 질문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8.02.23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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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사표> 영주 지음 | 사이행성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명절증후군을 한껏 겪고도 아직 피로감에 허덕인다면 <며느리 사표>(사이행성.2018)로 명절 뒤풀이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내들에게 청량감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명절 이틀 전 23년 차 주부가 시부모께 ‘며느리 사표’를 드리며 생기는 일들이 펼쳐져서다.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도 사표를 낼 수 있는데, 왜 며느리 역할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을까?”

주부 영주 씨가 맏며느리로 23년을 살아온 어느 날 떠올린 생각이다. 그런데 영주 씨의 선언은 중년 아내에게 찾아드는 무기력에서 비롯된 가벼운 투정이 아니었다. 일과 조기축구 등으로 있어도 없는 듯한 동반자의 부재 속에도 남편 뒷바라지, 시부모 챙기기, 자식 키우기를 감당하며 ‘나’ 없이 산 끝에 도달한 의구심이다.

23년간 영주 씨는 제사와 명절, 일상의 ‘노동’에서 철저히 배제된 남편을 보며 당혹스러워했고, 주말에 한 번은 쉬고 싶다는 아내에게 그럼 밥은 누가 하냐는 답이 되돌아올 정도의 전통적인 남편상으로 굳어졌다. 주말 휴식은 3~4년이란 투쟁 끝에 이뤄졌다. 살면서 느꼈던 부조리함, ‘나’를 찾고자 하는 자아의 열망은 점점 커졌을 터다.

이에 ‘며느리 사표’라 적힌 봉투를 시어른께 제출하고 1인분의 삶을 살기로 한다. 시부모님은 놀라셨지만 의외로 담담하고 부드럽게 받아들이셨다. 언제고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는 따뜻한 말도 남겨주셨다.

그런데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다. 친한 언니는 “누군 ‘며느리’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니?”라며 화를 냈고, 남편의 친구는 “그런 여자와 이혼하라” 조언했다. 친정엄마라도 다르지도 않았다. 시부모와 사위에게 미안해하셨다.

그렇지만, 그동안 하나씩 ‘나’를 찾기 위한 준비를 했던 영주 씨는 멈추지 않았다. 남편에게는 “우리 여기까지인 것 같아”라 이혼을 선언하고, 갓 대학을 졸업한 자식들에게 보증금과 6개월의 월세를 지원해준다는 말과 함께 독립할 것을 요구했다. 자신의 독립이자 가족 모두의 독립이었다. 마치 TV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사표를 쓰고 난 후는 어떻게 됐을까. 가족 구성원의 변화는 놀라웠다. 이혼한 것이 아니었기에 처음 집 밖 가족 정기모임에 참석했다. 누군가의 시중을 들 필요도 잡일을 할 일도 없었다. 수직의 관계가 수평의 관계가 됐다.

맏며느리가 사라지니 제사와 명절 의식도 간소해졌다. 제사를 합치고 명절 때 집에서 지내던 차례도 성묘로 바뀌었다. 책은 며느리 사표를 쓰기까지 과정과 그 이후 삶 5년여의 여정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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