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10년' 일군 기획자의 삶
'한국 뮤지컬 10년' 일군 기획자의 삶
  • 김현태기자
  • 승인 2010.11.24 2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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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유령' 들여온 설도윤 대표 "극진해야 산다"


"나는 '최선'이란 말을 싫어한다."

[북데일리] 뮤지컬 제작자 겸 프로듀서 설도윤의 생각이다. 설도윤은 '오페라 유령'을 한국에 들여온 장본인이다.  그는 최근 나온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다할미디어. 2010)을 통해 무용수로부터 시작해 한국 최고의 프로듀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털어놓았다.

설도윤은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다리를 찢으며 무용을 배웠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 무용을 한다는 건 기존 배우들 몇 배의 땀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바로 이 대목에서 그의 삶의 자세가 나온다. 그는 최선을 뛰어넘는 마음, 즉 한 분야에 미치는 태도로 임했다.

"과연 어떤 것이 최선일까?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누구나 취할 수 있는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최선이 아닌 '극진'의 상태일 때 비로소 어떤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다." 48쪽

여기서 극진은 극진한 마음의 그 극진이다.

무용수로 일하다 기획자가 됐다. 프랑스 뮤지컬 '재즈'를 무대에 올렸다.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그는 "시련의 강도가 크면 클 수록 충격을 덜 받는' 타입. 실제로 성공한 많은 사람의 공통점은 실패를 시련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업에서는 더 큰 실패를 겪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기회였다. 쓰라림과 무력감을 안고 단돈 60만원을 들고 미국에 건너간 그는 '황금알' 하나를 발견했다. '오페라 유령'이었다. 현지 공연이 끝난 뒤 관객은 눈물을 훔치느라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보고 그는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다.

"그래, 바로 저거다. 나만 유령에게 매혹된 게 아니다. 반드시 '오페라 유령'을 한국 무대에 올려야 한다. 이건 숙명이다."

1999년 꿈 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 이후 '오페라 유령'은 한국에서도 뮤지컬의 대명사가 됐다.

책엔 뮤지컬에 대한 많은 정보가 나와있다. 지난 10년은 한국뮤지컬의 비약적 발전의 기간이었다. 그 중심에 설도윤이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이번 자전적 에세이는 우리 뮤지컬의 역사이다.

그는 현재 '설앤컴커니'의 대표다. 매출 연 200억. 그가 늘 직원에게 강조하는 것은 '휴먼 네트워크'의 중요성. 해외의 최고 뮤지컬을 한국에 들여올 수 있었던 비결은 개인적인 열정과 집념 외에 그 점이 큰 몫을 했기 때문이다.

설도윤은 지금 2011년 '천국의 눈물'을 기획하고 있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미국의 작곡자와 한국의 프로듀서가 최초로 하는 공동작업이다. 그의 꿈은 세계시장에 내놓을 뮤지컬을 만드는 일. 그의 지난 이력은 그 꿈이 머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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