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화가` 죽을 때 품고있던 편지
`영혼의 화가` 죽을 때 품고있던 편지
  • 북데일리
  • 승인 2005.12.0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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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에게,

다정한 편지 그리고 50프랑 고맙게 잘 받았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고. 그게 중요한 문제이니, 내가 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고집하겠니? 좀 쉬어서 더 개운해진 머리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긴 그건 아직 아득한 일이겠지.

화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든 돈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그래, 정말 우리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랑하는 동생아, 내가 늘 말해왔고 다시 한번 말하건대, 나는 네가 단순한 화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너는 나를 통해서 직접 그림을 제가하고 있는 일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그림은 파산의 순간에도 냉정을 유지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너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죽은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 살아 있는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 사이에는 아주 긴장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글쎄, 내 그림. 그것에 내 생명을 걸었고 머리도 그것 때문에 흐리멍텅해 졌다. 좋아,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너는 사람을 사고파는 장사꾼은 아니다. 네 입장을 정하고 진정으로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도대체 넌 뭘 바라는 것이냐?

- 빈센트 반 고흐

이 내용은 1890년 7월 29일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당시 지니고 있던 글로서, 그동안 그의 마지막 편지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사실은 1890년 7월 24일 이전에 쓴 편지로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 그의 후원자이자 동반자인 동생 테오에게 부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고흐의 편지글을 모은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예담. 2005)는 지난 99년 6월에 출간, 현재 10만부를 웃도는 판매부수로 예술교양서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올 6월 개정증보판으로 발행된 이 책은 테오의 편지를 포함한 40여 통의 편지와 그림들이 추가로 실렸다.

37년의 짧은 생애 동안 지독한 가난과 고독, 예술에 대한 끝없는 집착에 이은 발작과 요절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으면서 영혼을 울리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고흐는 네살 아래 동생 테오에게 일기를 쓰듯 편지를 써서 보냈으며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668통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여동생 윌, 동료 화가인 고갱과 베르나르 등에게 띄운 편지들도 있다.

고흐는 편지에 `본의 아니게 쓸모없는 사람` `새장 속에 갇힌 새` `나는 개다`라는 표현을 비롯, 사촌 케이에게 구혼했다가 거절당했을 때의 심정, 매춘부 시엔과 동거로 빚어진 가족의 갈등, 아버지와 불화, 동료 화가 고갱과의 다툼 등을 숨기자 않고 토로했다.

편지마다 담긴 갈등하는 내면과 힘겨웠던 가난의 세월은 위대한 예술가 고흐가 얻은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아닌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한마디는 테오가 아닌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인생의 화두다.

그런데 도대체 넌 뭘 바라는 것이냐?

[북데일리 노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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