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보다 지독했던 독감 아시나요
흑사병보다 지독했던 독감 아시나요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8.01.18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인류 역사상 질병으로 인한 최악의 재앙은 무엇일까. 대개 흑사병을 떠올리지만, 제1차 세계대전과 맞물려 대유행한 스페인독감은 흑사병이 100년 동안 죽인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후천면역결핍증후군인 에이즈가 24년 동안 죽인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24주 동안 죽였고, 이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은 적게는 2100만 명에서 1억 명으로 추정될 정도다. 당시 유럽 인구 약 16억 명 중 3분의 1이 넘는 6억 명의 사람이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

스페인 독감은 세계 전역으로 퍼졌는데 조선도 비껴가지 못했다. 이른바 ‘무오년 독감’이라 부르는 독감은 1918년 조선 사람 742만여 명이 걸렸고 1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총인구 1670만여 명이었으니 약 37% 독감에 걸리고 약 2%에 달하는 사망자가 나왔다. 인도는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1700만 명, 타히티와 사모아 제도의 인구는 10~20%에 달하는 사람이 죽었다.

이 시기 스페인독감에 온 가족이 희생당한 화가가 있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화가이자 구스타프 클림트와 빈 분리파의 영향을 받은 에곤 실레다. 그는 죽음, 욕망, 원초적 성본능, 동성애 같은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 이를 인간의 육체를 통해 거칠게 묘사하는 화가다. 그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온전한 가족의 모습이 등장하는 작품이 바로 <가족>이지만, 사연은 비통하다.

▲ 에곤 실레, <가족>, 1918년, 오스트리아미술관

<가족>은 실레가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고 기쁜 나머지 아이를 만나기 전 미리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당시 유럽을 관통한 스페인독감에 아내 에디트가 감염되면서 아내와 배 속의 아이까지 잃고 만다. 곁에서 간호하던 실레마저 3일 만에 사망한다.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해부한 <미술관에 간 의학자>(어바웃어북.2017)가 소개한 사연이다.

저자는 이어 젊은 층에서 스페인독감 치사율이 가장 높은 까닭을 의학적으로 설명한다. 바이러스는 주로 면역체계가 약한 사람에게 주로 전염되지만 스페인독감이 특이하게 20~30대 젊은 층에서 맹위를 떨친 건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세포 간에 정보를 주고받는 물질로 외부 침입자가 체내로 들어오면 면역세포들이 숫자를 불리는데 과도한 면역 반응이 일어나면서 결과적으로 신체조직을 파괴해 정상세포까지 해를 입는 경우를 말한다. 책은 이처럼 명화에 숨은 이야기를 의학과 잇대어 풍성하게 전한다. 명화와 의학의 콜라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