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해법? 이어령의 '박쥐'
창의적인 해법? 이어령의 '박쥐'
  • 김현태기자
  • 승인 2010.06.02 2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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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창조>... 융합과 화합공간 '그레이 존' 눈길

 


[북데일리] [책속 포스트 잇] <유쾌한 창조>(알마. 2010)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 이어령과 나눈 대화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인터뷰어는 강창래 씨. 책은 두 사람이 공동저자로 되어 있다. 책은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이란 세 부분은 나뉜다. 아무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창조성 부분. 그 중 177쪽~179쪽을 소개한다.

"정말 창조적인 사람은 그렇게 순응하지 않는 거네."

"무슨 방법이 있나요?"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 기내 압력의 변화로 고막이 아파지면 승객들은 세 종류의 인간으로 갈라지게 되지. 첫 번재 그룹은 그냥 비행기를 타면 으레 그러는 것으로 알고 그 상황에 순응한느 사람들이지. 이들의 장점은 참고 견디는 것. 체념하거나 초탈하는 것.

두 번째 그룹은 무엇인가 시도해보려고 두리번거리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관찰하고 귀를 막거나 입을 벌리는 것을 모방해보는 거야.

세 번째 그룹은 아주 어마어마한 보잉 747기 같은 비행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도 승객들이 이착륙할 때마다 괴로워하는 단순한 귀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다니. 인간보다 기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항공기술자들의 의식에 대해 우선 분노를 느낄 줄 알아야 해. 그래야 다음 단계인 '문제 해결'을 위한 창조력으로 나아갈 것 아닌가."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은 적응하는 사람에 의해 유지되고 반역하는 사람에 의해 변혁된다고. 그 반역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 창조성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반역성인가? 그 반역은 무엇을 만들었을까?

"이어플레인(earplane)이라는 것이지. 아마 그것을 만들려고 처음 생각했던 사람도 그런 사소한 문제에 쉽게 분노했던 사람이었겠지. 이름도 잘 지었지 않나? 비행기라는 뜻의 에어플레인(airplane)과 잘 어울리지 않나. 이것을 끼면 압력의 변화를 조금도 느끼지 못하네. 이런 것을 만들려면 기압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물리학이 필요하고,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를 해결하는 소재공학, 그리고 귀의 구조를 알아야 하니 해부학적 생물 지식이 필요하지. 이 작은 것 하나를  만드는 데 세 가지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네."

"그렇군요. 이어플레인의 특허품을 만든 사람 역시 비행기의 좁은 공간에서 유레카를 외친 것이군요."

"그런데 차렷 자세로는 창조적인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아. 그래서 화장실이나 목욕탕 같이 일상적인 외부 공간과 단절된 곳에서 창조적인 상상력과 생각이 탄생하는 거지. 공동변소라도 화장실에는 혼자 들어갈 수밖에 없잖나. 그곳에서 비로소 모든 긴장이 물리는 거지. 그래서 철학자 린위탕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새로운 생각들은 아마도 대부분 화장실에서 뒤를 보다가 떠올랐는지 모른다'고 했어."

"그러면 선생님의 그 목욕탕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레이 존(회색지대)에 있지." (177쪽~179쪽)

책엔 이 '그레이 존'에 대해 몇가지 사례와 개념정의가 나와 있다. 우리는 흔히 회색지대를 검지도 희지도 않은 어정쩡한 곳을 의미한다. 이념과 사상이 명확하지 않은 곳이다. 객관성과 중립성으로 위장하며, 양쪽에 속함으로써 갖게 되는 리스크를 안 지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어령이 말하는 그레이 존은 그렇지 않다. 그는 책을 통해 '그레이 존'이 창조의 공간임을 설명한다. 이를 테면 '역(逆)박쥐' 역할을 한다. 박쥐는 새처럼 날개를 가진 포유류다. 단순히 보면 새도 아니고, 포유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류와 포유류가 전쟁을 한다. 이 때 평화의 길을 놓는 것은 '역박쥐'다.

"새들에게는 자기가 쥐처럼 생겼지만 그들과 같은 날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동물들에게는 새처럼 생겼지만 그들과 같은 짐승의 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이지. 조류와 포유류의 대립을 융합하고 화합해 보다 보다 넓은 생명의 원천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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