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속의 연필`로 쓴 BBC기자 희망일기
`내 머리속의 연필`로 쓴 BBC기자 희망일기
  • 북데일리
  • 승인 2005.11.3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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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인 알츠하이머로 사랑했던 모든 기억을 잃어가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아내와 그녀를 위해 대신 모든 것을 기억해 주겠다는 남편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담은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가 일본 개봉 한국영화 최고흥행 기록인 영화 `외출`의 27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톱스타 정우성과 손예진 주연의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상투적이고 뻔한 줄거리의 신파극이라는 `눈총`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영상미로 국내에서는 263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지난달 22일 일본에서 개봉, 2주 연속 일본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개봉 5주차까지 2위를 달렸다.

시한부 인생을 소재로 해 인기를 끌었던 최진실 주연의 KBS드라마 `장밋빛인생` 역시 안타까운 죽음을 절절히 묘사해 안방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관객들이 신파극에 열광하는 이유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현실성을 기반으로 한다. 올 1월 영국 BBC뉴스 과학기술담당 기자 아이반 노블(37)이 악성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자 전세계 네티즌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었던 바와 같다.

2002년 어느 날 심한 두통 때문에 병원을 찾은 아이반은 머릿 속에서 종양을 발견해 뇌수술과 함께 방사선과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투병과정에서 삶에 대한 태도가 서서히 바뀌어 간 아이반은 BBC뉴스 블로그에 병상일지를 적어나갔고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그의 글은 네티즌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선물했다.

청천벽력같은 불행을 당한 아이반은 삶을 포기하는 대신 `내 머릿 속의 종양`과 함께 생애 최고의 시간을 보낸다. 어린 딸에게 동생을 선물해 주고 가족과 함께 근사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등 남겨진 시간을 알뜰하게 계획하며 희망을 키워 나갔다.

스스로 `나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고 말한 아이반은 죽음 앞에 당당했다. 죽기 하루전에 올린 글에서 아이반은 순수한 고백을 담은 일기는 원래 계획했던 일이 아니었으며 투병생활을 담은 글을 쓰게 된 이유를 되돌아 봤다.

"사생활을 담은 저널리즘은 스스로 읽으면서도 특별히 매력을 느끼거나 관심을 가질 만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2002년 악성종양 진단을 받고나서 나는 무기력한 상황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발동했다.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아이반이 2002년 9월부터 2005년 1월 30일까지 써나간 글은 책으로 엮어져 국내에서는 <나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물푸레. 2005)로 출간됐다. 원제는 Like a Hole in the Head.

1967년 영국 리즈 태생인 아이반 노블은 루톤과 리즈에서 종합 중등학교를 다녔고 버밍엄 소재 아스톤 대학 졸업 후 독일에서 공부했다. 1988년에서 1990년까지 동독에 살면서 번역가로 일하다가 BBC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번역가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나이로비에서 부편집자, 인터넷 저널리즘 교사, 과학과 기술 담당 기자로 근무했다. 그리고 북런던에서 아내와 두 아이와 살면서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북데일리 노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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