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인간 '호모 페이션스'로 살기
고민하는 인간 '호모 페이션스'로 살기
  • 이동환 책전문기자
  • 승인 2009.03.30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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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책이 일본에서 1백만부 팔린 이유
 
[북데일리]  21세기인 지금 우리는 고민이 많다. 전 세계에 몰아닥친 경제위기의 여파는 우리의 가정에까지 이르고 있다. 또 자본주의의 역기능인 부의 불평등과 지구 온난화 등 우리의 삶을 걱정스럽게 만드는 요인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는다. 낙천적이어서 그런가? 아니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라고 말하며 고민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고민은 ‘배부른 자의 사치’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걱정하고 고민한다.
'Fast syndrome'에 빠져있는 나머지 우리는 한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남에게 뒤쳐질까 걱정한다. 마치 움직이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를 탄 듯, 쉼 없이 시지프스처럼 살아야만 하는 데에 걱정한다. 혹시 사람들은 빨리 움직임으로써 고민거리를 잊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잊으려고 했건만 우리 머릿속에 있는 그 고민거리는 쉼 없이 자신의 실체를 우리에게 순간순간 확인해 줄뿐이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보자. 우리의 행동이나 생각에는 그 나름대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선천적으로 높은 곳을 싫어하며, 어두운 곳을 두려워하고 쓴 음식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의 생존에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의 유전자에는 이런 위험을 피하게끔 프로그램되어 있다.
고민이나 걱정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우리의 생존에 유리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고민은 현실에서 자신이 처한 어려움이나 미래에 닥칠 일의 두려움을 걱정하게 만든다. 따라서 고민은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풀 수 있게 해주지는 않을까?

신간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년)의 저자인 강상중은 재일교포 2세로 현재 동경대학의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 <디아스포라 기행>의 저자인 서경석처럼 재일교포로서 자신의 정체성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고민은 많이 닮아있다. 일본인들로부터는 ‘조선인’으로 차별을 받았고, 한국인들에게는 ‘반쪽바라’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설자리가 어디인지에 대해 제일 먼저 걱정했음에 틀림이 없다. 저자는 자신이 처해있는 고민거리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호모 페이션스(Homo patience, 고민하는 인간)가 된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저자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두 명 있었다.

일본의 문학가인 나쓰메 소세키와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를 통해 저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어려운 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게했던  힘이 바로 고민이었고,  이 책 <고민하는 힘>은 그 과정을 에세이로 엮은 결과물이다 .

현대는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도 변해야하건만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으려 한다. 우리는 ‘사랑’이나 ‘종교’에서 영원한 가치를 찾고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우리는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것”(19쪽)을 찾고 있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처해있으니 더욱 어렵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9개의 고민거리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삶, 앎, 돈, 청춘, 믿음, 일, 사랑, 죽음, 늙음 이렇게 9가지 중에서 두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돈’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다.
‘돈’의 많고 적음이 행복의 척도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돈에다가 최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예컨대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치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돈만 밝히는 세태를 천박하게 보고 있다. 그러니까 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철저히 이중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의 한 대목, “돈 얘기지요. 돈이라면 어떤 군자도 바로 악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지요.”(47쪽)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다른 작품에서도 부자는 모두 속물이고 거의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나쓰메 소세키가 활동하던 100년 전의 세계는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하는 시기였다. 강력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 돈은 권력과 동의어였다. 저자는 이를 두고 “돈은 오래된 권위나 가치관을 통째로 뒤집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49쪽)라고 일침을 놓았다. 

막스 베버는 나쓰메 소세키와는 달리 신흥 부르주아인 부유한 부친을 두고 있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베버는 부지런하고 청빈한 삶이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자세였고, 이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전했다고 말한다.  아담 스미스의 말처럼 사람들 속에 도덕과 윤리가 존재하고 있기에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불평등과 불균형은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불공정한 경쟁체제가 보편적으로 나타났으며, 부의 편중이라는 자본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 20세기 초 새로운 제품 판매시장이 필요해진 선진국은 제국주의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를 정치 경제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제국주의 시스템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계의 경제 시스템으로 자리하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공부하면서 고민에 빠진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모든 가치가 변화하는데 돈만은 불변의 가치를 지닌 일종의 기호로서 계속 존재해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래서 돈은 경시하기 힘듭니다.”(62쪽)
고민 끝에 나온 결론치고는 단순하다. 돈은 결코 우리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돈이 있으면 편리할 뿐이다. 그렇기에 돈을 경시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아홉 번째 주제는 ‘늙어서 최강이 되라’이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시기에 노인에 대한 이미지와 현재의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며, “노인은 분별력이 있고 완숙하며 꾸밈이 없고 담백한 존재하는 과거의 이미지는 현대에 와서 거의 무너졌다.”(159쪽)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노인은 대접을 못 받고 있지만, 저자는 나이 먹는 데 대한 두려움을 없애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한다. 새로운 일이라는 게 재미있다. 먼저 배우가 되고 싶으며, 그 배역은 자신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전한다. 그 영화는 님 웨일즈가 혁명가인 김산의 인생을 엮은 <아리랑의 노래>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공동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세워놓고 있다. 그리고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일본종단을 하고, 그 다음에는 한반도로 건너가 남북으로 종단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올해 60세인 저자는 정말 뻔뻔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저자는 책을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밝혔다. “철저하게 ‘고민하고’ 그래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기를 기원합니다.”(9쪽) 이어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젊은 사람들은 더 크게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계속해서 결국 뚫고 나가 뻔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새로운 파괴력이 없으면 지금의 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도 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70쪽)

이 책은 작년 일본에서 출간이후 100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책의 분량은 200쪽도 안되지만,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어떤 굵은 책보다도 더욱 무게를 가지고 있다. 고민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는다는 저자 강상중의 태도에서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난다.
저자 강상중 (사진제공 : 사계절 출판사)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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