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싱싱한 삶 '로커보어'로 살기
새롭고 싱싱한 삶 '로커보어'로 살기
  • 이동환 책전문기자
  • 승인 2009.03.2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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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가족, 1년간 '지역산 먹거리' 먹기 실험


[북데일리] 옥스퍼드 사전은 매년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를 선정해 발표한다. 2007년 올해의 단어는 ‘Locavore’라는 신조어였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Locavore는 Local(지역)과 vore(라틴어의 먹다)를 합성한 단어로 ‘지역 먹 거리 주의자’를 일컫는다. 패스트 푸드로 특징 지워지는 이 시대의 음식 문화에 반대하며 전통적인 먹 거리를 찾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2006년에는 탄소 중립(Carbon Neutral), 2008년은 ‘하이퍼 마일링’(Hypermiling)과 같은 지구의 환경과 에너지에 관한 신조어를 선정하고 있다. (하이퍼 마일링: 자동차의 정해진 연비보다 더 높은 연비를 짜내기 위한 주행방법을 통틀어 이른다. 이를테면 ‘친환경 운전’)

겨울철 마트에 가보면, 겨울철에 어울리지 않게 각종 채소와 과일이 싱싱한 모습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이런 장면을 우리의 두 세대 조상들은 상상도 못했을 터이다. 채소들의 이름만 보더라도 브로콜리, 양상추, 콜리플라워, 아스파라거스, 파프리카 등으로 낯선 이름이지만 지천에 널려있다. 이 채소들은 한국의 온실에서 재배되었다.

과일 매장에 보이는 포도, 바나나, 오렌지 등은 외국에서 수입되었음이 분명하다. 고기 파는 정육점을 가보면 원산지 표시가 눈에 쉽게 띈다. 호주산과 미국산 쇠고기가 보인다. 이 재료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요리하면 아주 풍성한 식탁을 마련할 수 있다. 이 재료로 조리된 음식을 함께 나누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면 아주 행복하리라고 생각된다. 국제화된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이 준비된 식탁에서 가족들은 세계화로 인한 미각의 혜택을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이 행복한 가족의 식탁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음을 아는가. 이들이 즐기고 있는 음식의 재료가 식탁으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재배 시에 사용되는 비료, 제초제 그리고 포장과 운송 등 매단계마다 화석연료는 감초처럼 사용된다. 당장에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우리는 미래를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탁을 이제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 지구를 지속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있는가. 로컬 푸드(local food)가 그 해답이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의 어느 지역에서도 자신의 지역에서 재배된 채소와 고기를 먹었다. 그러나 각종 교통의 발달은 지구촌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재배된 각종 음식 재료가 싼 가격으로 지구촌 곳곳으로 공급되었다. 그럼으로 겨울철에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이젠 아주 당연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우리는 이에 대한 막대한 비용을 내야만 했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지구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으며, 지역에서 재배되는 각종 야채와 과일 및 고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즉 생물종의 다양화가 사라졌다. 인류는 그동안 8만 종의 식물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인류의 먹 거리에서 4분의 3이 불과 8개 품종이라고 하니, 나머지 품종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화의 밀물 속에서 사라져가는 지역의 특성을 지켜야 할 때다. 특히나 지역 음식과 식재료에는 그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다. 지역의 특수한 음식이 사라진다면 그 문화 또한 사라질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바로 로컬 푸드다.

미국 애리조나 주 투산에서 살던 한 가족이 애팔래치아 산맥의 남부로 이주를 한다. 거주지를 옮긴 이유는 농장 생활을 하기 위해서였다. 요컨대 이 가족은 자신들의 손으로 먹 거리를 직접 길러서 로커보어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가족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농장에서 자신들이 유기농법으로 직접 채소를 재배하고, 가축을 길렀다. 그 1년간 삶은 행복 그 자체였다. 자연과 함께 한 한 해의 기록이 이 책 <자연과 함께한 1년>(한겨레출판.2009년)이다.

작가인 바버라 킹솔버, 남편 스티브 호프 그리고 두 딸로 구성되어 있는 이 가족은 과연 한 해 동안 로커보어로 어떻게 살았는지 그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3월에 이 가족의 새로운 농장생활은 시작된다. 봄은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땅에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이들이 수확한 먹을거리는 아스파라거스다. 제철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수확한 채소는 그들에게 가장 우아한 식탁을 제공해준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제철의 먹을거리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것들을 좋은 상태에서 맛본다는 의미다.”(55쪽) 이 가족은 패스트 푸드의 제국인 미국에서 로컬 푸드 즉 슬로 푸드(slow food)운동에 동참한다.

먹는 행위자체는 본능적이다. 이는 생존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은 우리에게 생존 목적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는 오감을 모두 사용된다. 미각은 물론 시각, 후각, 청각, 촉각까지 우리의 모든 감각이 총동원된다.

슬로 푸드는 패스트 푸드의 균질함에서 벗어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서 먹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슬로 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 세계에 8만 3천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 운동은 “요리 문화를 활성화하고, 먹을거리 생산과 연계된 농업의 생물 다양성과 문화 정체성을 보존하며, 멸종 위기에 처한 전통 먹 거리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4월이 되면 산에서 야생버섯을 채취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어느 철, 어느 장소에 어떤 버섯이 있는지를 잘 알았다. 그들은 버섯을 채취하러 갈 때 구멍이 숭숭 뚫린 망태기를 가져간다. 망태기의 구멍은 버섯을 따고 집으로 돌아갈 때 버섯의 포자를 퍼뜨리기 때문이다. 이 행위는 자연 순환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풍속을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이 농장에서는 28마리의 병아리와 15마리의 새끼 칠면조를 구입했다. 이 가금을 기르는 일은 막내딸인 릴리의 일이었다. 릴리는 닭을 길러 달걀을 농민시장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또 이웃들에게 자신이 재배한 채소를 나누어 주는 모습은 도시민들이 잃어버린 지역사회의 따스함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이 가족은 농사짓는 틈틈이 여행도 간다. 캐나다에 사는 친지의 집까지 자동차로 다녀오기도 하고, 슬로 푸드 운동이 시작된 이탈리아로 가서 그곳 시골의 미각에 빠져보기도 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적 산업적 농업이 가져다준 폐해를 비롯해, 전 세계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부분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독자들에게 그 잘못된 실상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채소나 과일,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에 대해 많은 지식을 수록하고 있고, 직접 재배한 채소로 만들 수 있는 각종 요리의 조리법까지 소개해준다.

이 가족처럼 모두가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가서 로컬 푸드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도시에서도 충분히 로컬 푸드는 가능하다. 상하이의 텃밭 면적은 60만 에이커에 이르며, 모스크바는 전체 가구의 3분의 2가 먹을거리를 직접 재배하고, 쿠바의 아바나에서는 도시에서 소비되는 농산물의 80퍼센트 이상을 도시 텃밭에서 조달한다고 한다. 한국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지구상황을 대표하는 단어는 ‘세계화(global)’다. 그러나 이는 부익부빈익빈을 구조화하고 다국적 기업이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등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의 대안이 바로 '지역화(local)'다. 이 지역화의 첨병이 바로 로커보어(locavore)가 아닐까?

5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의 이 책을 읽으면 독자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운 삶이 잘못된 방식이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는 괜한 말이 아니다. ‘먹는 것에 따라 그 사람의 존재가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적인 삶에 대한 지식, 정보를 주고 있다. 게다가 감동도 함께 느낄게 해주는 흔치 않은 책이다. (농장에서의 저자 가족 모습. 사진제공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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