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속'을 보면 우리의 삶이 보인다
'흙 속'을 보면 우리의 삶이 보인다
  • 이동환 책전문기자
  • 승인 2009.02.23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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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박사' 권오길, 흙과 흙에 사는 생물 이야기

 

 

 

 

 

 

 

 

 

 

 

 

 

 

[북데일리] 토양이란 쉽게 말하면 바로 ‘흙’이다. ‘어떤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밑받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토양이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사전적 의미다. 요컨대 흙이란 지구를 덮고 있는 물질일 뿐만 아니라 뭇 생명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권오길 교수는 이 책 <흙에도 뭇 생명이>(지성사.2009년)을 통해 흙의 중요성을 말한다.

“물에 사는 생물을 빼고는 죄다 흙에 산다. 사람은 말할 필요가 없고, 여러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활터전이자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물과 양분을 저장하고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흙이다.“(41쪽)

대부분의 동물과 식물은 토양, 즉 지표위에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그것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상 또한 존재한다. 바로 땅 속이다. 이곳이 바로 지표에 사는 생명을 위한 온갖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법. 달팽이 박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권오길 교수. 그가 텃밭을 가꾸면서 만나는 흙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이야기에는 삶의 깨달음과 자연의 신비가 들어 있다.

요즘 길거리에는 보이는 개들은 거의 주인이 목줄을 묶어 끌고 다닌다. 예전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녔지만, 언제부터인가 개가 혼자 다니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그런데 수컷은 주인과 다니든 혼자 다니든 길거리 곳곳에 오줌을 싼다. 즉, 자신의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다. 동물의 당연한 본능적 행위다. 자신의 영역을 확보함으로써 먹이 감을 확보하고 그 영역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족을 키워가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애완견은 주인이 먹을 것을 다 주기에 이런 영역 표시를 안 해도 되련만, 개들은 여전히 본능적인 행동에 몰두해있다.

이렇듯 동물들은 움직이면서 자신의 영역표시를 하고, 야생에서는 자신의 먹이를 사냥하기도 한다. 나아가 자신이 위험에 처하면 도망갈 줄도 안다. 그런데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은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까? 궁금하다.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기에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세계도, 우리가 보는 지상의 세계와 다를 바 없이 생을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그들 역시 영역표시를 하고, 삶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어느 식물이나 뿌리와 잎줄기에서 나름대로 다른 종에 해로운 생장억제 물질을 분비하여 못 자라게 하니 이것을 타감작용이라 하고, 영어로는 알렐로파시(allelopathy)라 한다.”(34쪽)

즉 저자의 표현처럼 식물들도 땅 속에서 자신의 삶과 번식을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식물의 세계도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자유롭고 평화롭지만은 않다.

땅 속은 식물만의 전용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생물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흙속에 사는 미생물은 지구를 지키는 역할에서 으뜸이다. 우리가 흔히 세균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1천 분의 1밀리미터의 크기에 지나지 않으니 우리 눈에는 보일 리가 없다. 그런데 땅 속은 그들의 세계다. 찻숟가락 하나 분량의 흙 속에는 1~10억 마리의 세균이 산다고 하니 개체수로 따진다면 그들이 가장 성공한 생명체다.

이들은 자연세계에서 분해자 역할을 한다. 즉 그들은 자연의 순환 시스템에서 청소부 역할을 도맡고 있는 셈이다. 미화원이 묵묵히 더러운 일을 함으로써 도시의 청결이 유지되듯이 그들은 우리 지구를 항상 깨끗하게 만드는 지구 미화원이다. 그들의 역할은 청소부에서 그치지 않는다. 세균들도 자신의 몸을 방어하고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자신의 몸 안에 물질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항생제의 원료다. 우리는 세균 덕분에 건강을 지킬 수 있고 또 깨끗한 환경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땅 속에는 동물도 식물도 아닌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 균류인데, 이들의 일부를 우리는 버섯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버섯 또한 자연의 분해자로 주로 죽은 나무나 풀을 썩게 만들어 숲을 청결하게 한다. 현재 한반도에는 2,000여종의 야생 버섯이 있는데, 이중 30~40퍼센트가 먹을 수 있다. 나머지는 먹을 수 없는 독버섯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둘의 성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버섯의 성분을 분석하면, 수분이 90퍼센트, 탄수화물이 5퍼센트, 단백질이 3퍼센트, 지방이 1퍼센트고 나머지 1퍼센트가 무기물질과 비타민이다. 그런데 1퍼센트만이 존재하는 무기질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식용과 독버섯이 구분된다고 한다. 작은 차이가 큰 것의 존재를 결정해주고 있다. 인간에게 해를 주는 독버섯도 자연에서는 분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니까 독버섯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자연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지구의 주인은 자연이지 결코 인간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권오길 교수는 “하루에 열 가지가 넘게 자연의 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그러면 그만큼 심성이 포실하고 부드러워진다.”(14쪽)라며  인간과 자연의 친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 덮인 삶을 사는 현대인,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다.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인간의 심성이 탁해졌는지도 모른다.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자연의 소중함으로 되새기면, 우리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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