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합격기원을 위한 '엿'의 유래
[신간] 합격기원을 위한 '엿'의 유래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7.03.27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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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위의 한국사> 민병덕 지음 | 책이있는마을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시험을 앞둔 이에게 줄 선물로 떠오르는 것은? 단연 ‘엿이나 찹쌀떡’일 것이다. 꼭 붙으라는 뜻에서 시험장 문이나 벽에 엿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시험을 앞두고 엿을 먹거나 엿을 기둥에 붙이는 이런 풍경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먹거리에 담긴 풍성한 역사 이야기 <밥상 위의 한국사>(책이있는마을.2017)가 소개한 바에 따르면 조선 시대부터다. 과거시험을 실시한 고려 광종 이후 과거시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성리학이 중심사상으로 자리 잡으면서부터 선비들은 과거에 목맬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선비들은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치러 올라가는 길에 문경새재라는 고개를 거쳐 한양으로 올라가길 선호했다. 다른 고개도 있지만, 문경(聞慶)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에 새재는 ‘새도 넘기 힘든 고개’를 뜻해서다. 한마디로 승승장구한다는 상징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당시 문경새재는 하루에 넘기 힘들었다. 정상인 조령에 자리한 숙박시설에 묵어가야 했다. 그곳에서 한 할머니가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을 상대로 엿을 팔았고 한 선비가 할머니가 파는 엿을 사 먹고 과거에 딱 붙은 후부터 엿을 먹거나 시험장 기둥에 엿을 붙이는 풍습이 생겼다는 전설이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남편이 과거시험을 볼 때 아내의 도움을 나타내는 기준을 엿으로 삼아 시험장에 엿이 등장했다는 내용이다. 선비들이 하룻밤 주막에 머물 때 아내가 정성을 다해 밤을 새워 만들어준 엿을 길게 늘여 그 빛깔이 희면 흴수록 부인이 남편 뒷바라지를 잘한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영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비율이 불과 13% 안팎이라니 무엇이든 붙잡고 싶었으리라.

책은 우리와 뗄 수 없는 먹거리 32가지를 소개하며 음식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까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우황청심환이 우리 전통 약재라는 이야기부터 과거에는 수박을 먹지 않았으며, 임금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신하에게 주었다는 탕평채, 본래 해태라 불렸던 먹거리 김의 유래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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