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책읽기-21] 미토콘드리아 없었다면 인류 없다?
[365책읽기-21] 미토콘드리아 없었다면 인류 없다?
  • 김지우기자
  • 승인 2009.02.11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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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미토콘드리아>...재밌고 신비로운 지적 모험

[북데일리] [화제의 책] 500페이지가 넘는, 괜찮은 과학책을 읽어야 할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소풍 떠나기 전날의 설렘? 풀기 어려운 숙제를 앞에 둔 막막함? 만약 전자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독서광에게 그 자질을 준 건 신이 내린 축복이다.

<미토콘드리아>(뿌리와이파리. 2009)는 분량이 보통 책의 두 배(529p)다. 쉽지 않은 가독성을 감안하면 세 권 정도라고 해야 맞겠다. 이 책은 무엇보다 표지가 참 아름답다. 미토콘드리아 그림에 검정색과 녹색, 황토빛 보라색이 생물학과 진화의 신비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표지만으로 읽고 싶은 충동이 이는 책이다.

아무튼 표지만 감상하고 말면 얼마나 좋을까. 겉장을 넘기면 깨알 같은 활자가 한숨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활자가 조합해낸 어려운 용어와 문장은 또 어떤가. 그러나 그보다 더 경이로운 것은 대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토콘드리아' 하나로 이 두꺼운 책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체 미토콘드리아가 뭐 길래. 일단 다음 문장을 보자.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다면 지구의 생명체는 여전히 세균뿐이었을 것이다.'

책의 주장이다. 만약 맞다면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다면 인류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따라서 책을 읽는 우리는 먼저 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에 절 한번하고 책장을 넘겨야 옳다. 먼저 미토콘드리아의 이력을 보자.

이름 : 미토콘드리아
나이 : 최소 수십억 살
모양 :지렁이
크기 : 길이는 1~4마이크로미터 (모래알 한 알 정도가 되려면 1억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필요하다.) 성인 한 사람의 미토콘드리아 양은 1경 개, 우리 몸무게의 약 10% (참고. 정자엔 100개 이하의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조상 : 미토콘드리아 이브
거주지 : 세포. (모든 동물의 세포에 둥지가 있으며, 보통 세포 하나에 수백~수천 개씩 모여 산다.)
별명 : 생명의 발전소. (우리 몸의 에너지를 충당한다,)
특기 : 생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생산한다.
취미 : 노화와 죽음을 조종할 수 있다.
공로 : 지구상의 모든 다세포 생물의 진화를 이끌었다.
과거 : 독립된 생명체였다.
자기소개 : 난 오랫동안, 적어도 수십억 년 독립생활을 했어. 그러다 홀로 사는 게 너무 심심해서 다른 세균의 세포 안에 자리를 잡았어. 그 때가 음. 약 20억 년 전 쯤 돼. 그 뒤에 난 생명을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였지. 난 늘 부지런하니깐. 주위를 둘러봐. 다 내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이야. 가장 멋진 작품이 인류라는 종이지.

책은 바로 이 대목에서 지적 호기심을 폭발시킨다. 책에 따르면 미토콘드리아가 다른 세포 안으로 들어간 사건은 지구의 생명의 역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사건이 없었다면 지구상엔 현재 눈에 보이는 생물은 없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만 존재할 뿐.

이로부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풀하우스>를 쓴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인류의 탄생이란 "우연히 일어난 우주적 사건"에 지나지 않으며 "진화사의 끝머리에서 인류라는 종이 태어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전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 닉 레인도 같은 주장을 편다.

"미토콘드리아를 획득한 사건은 우연한 사건이었다. 같은 조건 아래에서도 반복적으로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다. 따라서 생명이라는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돌리면 다세포 생물이 나타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때문에 지구 외의 다른 행성에서도 지적인 생명체를 만날 확률은 대단히 적을 것으로 본다. 우리와 지구가 얼마나 미토콘드리아에게 고마워야 할 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더구나 저자는 책을 통해 "미토콘드리아가 세상의 숨은 지배자가 되어 에너지와 성과 죽음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노화에도 미토콘드리아가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엔 이 밖에 눈길 끄는 이야기가 많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도 그 중 하나다. 요약 소개하면 이렇다.

'모든 미토콘드리아엔 미량의 유전가가 있다. 이 유전자는 난자를 통해 유전된다. 따라서 역으로 모계를 따라 조상을 추적할 수 있다. 즉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를 좇아 아득히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면 인류의 조상, 즉 '미토콘드리아 이브'를 만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그녀'는 17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 살았다. 말하자면 인류 조상의 발원지는 아프리카인 셈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생명의 신비를 담고 있는 작은 우주다. 독자들은 저자를 따라 세포학에서 진화론, 고인류학, 생화학, 생리학, 미생물학, 의학을 넘나들며 이 소 우주를 탐험할 수 있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충분히 가치 있는 여행이며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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