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아세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아세요?
  • 이동환 책전문기자
  • 승인 2009.02.01 0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난해한 현대과학 '비유'통해 쉽게 설명

 

[북데일리] 찰스 P. 스노우의 <두 문화>에 보면 “비과학자(문학적 지식인)들은 과학자가 인간의 조건을 알지 못하며, 천박한 낙천주의자라는 뿌리 깊은 선입관을 갖고 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즉 과학자들은 ‘비인간적 낙천주의자’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낙천주의적 성격 때문에 현대 과학이 이렇게 발전한 것은 아닌가’하고 반문을 할 수도 있다. 낙천주의하면 나는 카를 포퍼가 생각난다.

포퍼(1902-1994)는 과학철학자이자 저술가다. 그의 저술은 과학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비평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를 다루고 있다. 포퍼는 겸손했다. 이런 성향은 그의 과학관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과학에 있어서 이론은 언제라도 거짓으로 증명될 수 있다'고 봤다. 즉 절대적인 이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완성한 가설이나 이론도 검증과정에서 반론에 무너지거나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서 그 결과 폐기될 수도 있다. 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려운 과제일지라도 과학자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테니 말이다. 이는 포퍼가 겸손할 뿐만 아니라 낙천주의자 였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는 미래에 대해서만큼은 그리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우리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미래를 잘 예측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표시한다. 포퍼는 이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알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오늘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미래가 우리의 지식에 더 많이 좌우될수록 우리는 미래에 관해서 점점 더 조금밖에 알 수 없게 된다... 오늘날 전문지식을 갖추는 일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를 가꾸기 위해서일뿐 예측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미래에 대해 예측하려면 다른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가령 느낌이나 감정 같은 것 말이다.”(346쪽)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든다. 역시 포퍼는 겸손하다. ‘과학적 예측’보다는 ‘느낌’이나 ‘감정’같은 비과학적 도구가 필요하다니 말이다. 이러한 포퍼의 견해를 ‘포퍼의 역설(Popper's Paradox)'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신간 <슈뢰딩거의 고양이>(들녘.2009년)에 나오는 41가지 이야기 중 하나다.

포퍼하면 또 생각나는 게 있다. 일부선 포퍼를 ‘프로이트 살인자(The murder of Freud)'’라고 부른다. 포퍼는 프로이트를 과학계에서 추방했다. 즉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포퍼는 과학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부분으로 '반증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은 귀에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 같아서, 검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이비과학으로 봤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무의식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이제 더 이상 프로이트의 이론은 과학 분야에서 찾을 수 없다. 그의 이론은 문화 분야에서나 살아있을 뿐이다. 이 이야기는 이 책 중 ‘프로이트의 모욕(Freudian Insult)'부분에 나온다.

“프로이트는 태양 중심의 세계관과 세대를 거치며 종이 변화한다는 생각이 인간의 나르시시즘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인간에게 그들이 세계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다윈은 그들이 동물계의 꼭대기에 자리 잡는 것을 막았다. 그 다음으로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분석의 아버지로서 인간이 더 이상 자아의 주인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시켜주었다고 보고 있다.”(321쪽)

이 부분은 인간의 존엄성에 상처를 주고 어찌 보면 모욕적인 과학적인 발견을 한 사람으로 자신을 코페르니쿠스와 찰스 다윈과 동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자화자찬의 극적인 표현이다.

책의 부제는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아포리즘(Aphorism)의 사전적 의미는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이다. 예컨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같은 글이 아포리즘을 나타낸 대표적인 경우다.

‘간결한 것이 의미를 가진다’라고 하면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 떠오른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있을 경우, 그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가정을 사용한 것이 옳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설명은 간단할수록 좋다는 의미다. E=mc² 처럼 간결한 공식 하나로 현상을 충분히 설명한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다. E=mc² 를 보고 과학자들은 ‘아름답다’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이 책에 수록된 41개의 주제 중, 물리학 특히 양자물리학과 수학에 관련된 부분은 상당히 어려웠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과 같은 양자물리학의 경우에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대중을 위한 과학책이어서 상당히 쉽게 써졌음에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것 보다는 한 번 보는 게 낫다’라는 말은 우리의 시각이 감각기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일 터.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부분이 더 많다. 가시적인 세계 보다는 비가시적인 세계가 훨씬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외치는 건 교만한 태도 아닐까. 과학의 세계를 보다보면 항상 겸손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책의 저자는 독일 출신의 에른스트 페터 피셔다. 독일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미국 칼텍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의 여러 분야를 전공한 사람답게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하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과학'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이 책을 천천히 정독을 하다보면 과학 책도 쉽고 재미있구나 하고 느낄 것 같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안전함을 증명해 보이려고 고안한 사고 실험이다.  종종 세기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이미지와 비유들을 설명의 도구로 차용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