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 야한 로맨스, 그리고 이방인
쌍화점, 야한 로맨스, 그리고 이방인
  • 이동환 책전문기자
  • 승인 2009.01.22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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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단일민족은 신화에 불과하다"

[북데일리] 요즘 영화 <쌍화점>이 인기다. 조인성과 주인모라는 잘 생긴 배우 탓일까. 파격적인 베드신 때문일까. 특히 여성들이 많이 보는 모양이다. 젊은이들은 아마도 쌍화점을 영화와 연관짓겠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노래'를 연상한다.

쌍화점은 고려시대 속요로, <고려사> '악지'에 실려 있다. 흔히 남녀상열지사라고 표현되는 야한 내용이다. 당시 퇴폐적인 성윤리가 잘 나타나있다. 영화 쌍화점은 '역사를 뒤흔든 금기의 사랑'이란 카피를 달고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야하고 이탈된 로맨스라는 점에선 공통 코드가 있다. 속요 쌍화점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쌍화점에 쌍화(雙花) 사라 가고신, 회회(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위 가사를 요즘 말로 바꾸면 "쌍화점에 떡을 사러 갔더니, 회회아비가 내 손목을 잡더이다." 란 뜻이다. '회회(回回)아비'와 '쌍화(雙花)'란 단어가 눈에 띈다. 회회는 이슬람 사람이고, 쌍화는 이슬람식 떡을 뜻한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아라비아인이 떡집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집에 떡을 사러 온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는 내용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터키 사람이 케밥 집을 서울에서 운영하고 있는 식이다.

세계화 시대인 지금 서울 같은 대도시는 수많이 인종이 살고 있다. 외국 음식점 운영 역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약 700여 년 전인 고려 말에 외국인, 그 중에서도 아주 먼 나라인 아라비아인이 개경에서 떡집을 했다는 사실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서 보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존재는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주를 했다.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동부에서 태어나 전 세계로 이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더 나은 삶을 살려고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음은 자명하다. 쌍화점을 운영하던 회회인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고려에 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한반도에도 이처럼 끊임없이 이주민들이 들어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역사가 이희근의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너머북스.2008년)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로 들어온 이주민들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시황은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벌였다. 그런데 무리하게 진행된 토목 공사와 폭정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진을 떠나 한반도 남부까지 이주했고, 이들이 진한을 건국했다고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에 나온다. 또 진한 교체기에 수만 명이 고조선으로 이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주 원성왕릉에 있는 무인석을 보면 이목구비가 우리와는 아주 다르다. 또 복장이나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인데, 아랍인의 형상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즉 아랍인들이 신라에 와서 무인으로 활동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처용그림이나 처용탈의 모습도 우리와 사뭇 다르다. 처용의 정체에 대해서 학계에서 논란이 있는데, 처용이 아랍인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조선시대 백정(白丁)은 천민을 의미했다. 이들은 도축을 주업으로 하면서 사냥, 기예, 유기 및 가죽제품의 제조와 판매에 종사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심한 차별을 받았다. 그런데 백정 집단은 고려시대 거란인, 몽골인 등 북방 유목민들이 한반도로 들어와서 농경에 종사하지 않고 유목인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들로 인하여 육식이 보급되었고, 또 우리사회의 식생활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렇게 외국에서 들어와 한반도에 정착한 이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을 것이고, 그들은 지금 한반도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의 선조일 것이다. ‘한민족이 단일 민족이다.’라는 말은 이제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즉 단일 민족은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조선시대의 백정 집단처럼 북방 이주민들은 한반도에서 차별을 받았다. 아마 그 집단이 대규모였고 힘이 있었다면 그들이 주류로서 활동했겠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기에 차별 속에서 힘든 삶을 영위했을 터. 실상 낯선 자에 대한 경계는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결혼 상대자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신부를 수입(?)해서 가정을 꾸린 집이 많아지고 있다. 또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근로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많다. 역시 이들도 차별을 받고 있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출신이라고 그들을 차별해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 그들을 차별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우리는 잘못이 없는 것일까?

거꾸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한국인이 미국이나 유럽처럼 부유한 나라에 가서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면 이도 당연히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백인들에 의한 유색인종 차별을 받아들이기 싫다면, 우리 또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배타적인 ‘이방인 혐오증’을 만들었다. 우리도 이 한반도에 이방인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왔다는 이유하나로 텃세를 부리는 유아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은 이 시대 우리는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과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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