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교수직 거부하고 빈둥빈둥 선택한 나쓰메 소세키
[신간] 교수직 거부하고 빈둥빈둥 선택한 나쓰메 소세키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7.02.28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 지음 | 유숙자 옮김 | 민음사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나쓰메 소세키만큼 다양한 장르와 문체를 구사한 작가는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다양성은 하나의 수수께끼다.”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추천사다.

2016년은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나스메 소세키(1867~1916)의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것을 기념해 여러 출판사에서 그의 소설 전집을 펴냈다.

<유리문 안에서>(민음사. 2016)도 그의 서거 100주기 (1916년 12월 9일)를 기념해 출간된 수필집이다. 이 책에는 그의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친 어린 시절과 병상 체험을 들려주는 이야기와 신문사 ‘입사의 말’과 ‘작가의 생활’에 대한 에세이가 수록돼 있다. 당시 그가 신문에 정기적으로 발표한 글들이다.

1867년, 여덟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나쓰메 소세키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부친의 친구에게 양자로 들어간다. 이후 여러 사정 때문에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를 오가며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도쿄 제국 대학에 입학해 스승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다.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일본과 서구, 전통과 근대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그는 염세주의에 빠지고 신경 쇠약 증세를 보인다. 특히 영국 유학 시절 인종 차별 경험과 일본은 서구를 흉내 내고 있을 뿐이라는 자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당시 그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 만큼 증세가 심각했지만 귀국 후 데뷔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한다.

이 작품으로 호평을 받은 그는 계속 새로운 글을 발표하며 인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한다. 이어 교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마다하고 아사히 신문사의 전업 작가로 취직해 자유롭게 글을 쓴다. 당시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짓거나 “어째서 그 좋은 기회를 버렸느냐?”는 질문을 해댄다.

‘입사의 말’에 그의 답변이 실려 있다. “문예상의 저술을 생명으로 삼는” 그에게 신문사의 일은 무척 “고마운 일이며, 그토록 기분 좋은 대우도 없고, 그토록 명예로운 직업은 없다”고 말한다.

또 ‘작가의 생활’편에서 그는 ‘명창정궤(明窓淨机,)가 자신의 취미라고 말한다. 이는 ’밝은 창에 깨끗한 책상이라는 뜻으로, 검소하고 깨끗하게 꾸민 방’을 이르는 말이다. 계속되는 그의 설명은 이렇다.

“(나는) 한가로움을 사랑한다. 자그맣게 빈둥빈둥 지내고 싶다. 밝은 게 좋다. 따스한 게 좋다.

성격은 신경과민한 편이다. 세상사에 대해 지나치게 감동하여 곤혹스럽다. 그런가 하면 또 신경이 둔감한 구석도 있다. 의지가 강해 억누르는 힘이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완전히 신경 감각이 둔한 부분이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다.

세상사에 대한 애증은 많은 편이다. 가까이 두고 쓰는 두고 쓰는 도구에도 마음에 드는 것과 싫은 게 많으며 사람이라도 말투나 태도, 일 처리 방식 등에 따라 좋아하는 사람과 싫은 사람이 갈린다. (중략)

장지문에 햇살이 비치는 곳에서 글을 쓰는 걸 가장 좋아 한다. 가끔은 햇빛 드는 툇마루에 책상을 갖고 나와서 머리에 햇볕은 쬐며 작업하기도 한다. 너무 더워지면 밀짚모자를 쓰고 글을 쓸 때도 있다. 이렇게 하면 글이 잘 써지는 것 같다. 온통 밝은 곳이 좋다.” (P.123~P.124)

일상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그의 글은 오히려 유머러스하면서도 담백한 그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가 만일 살아있다면 요즘처럼 한낮의 볕이 따사로울 때 유리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고요한 봄볕에 싸여 황홀하게 원고를 끝내고, 팔베개를 하고 툇마루에서 잠시 낮잠을 자는 그를 상상해 본다. 그의 전작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매우 반가울 책이다. 문고판으로 두께도 얇아 언제 어느 곳이나 휴대하기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