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365권-6] 식물이 인간을 길러왔다
[1년365권-6] 식물이 인간을 길러왔다
  • 김지우
  • 승인 2009.01.08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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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흥미진진'


<욕망하는 식물>(황소자리. 2007)을 내 손에 올려놓은 건 얼마 전 읽은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의 버릇은 누군가가 추천한 책을 꼭 읽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추천 받아 읽게 된 책이 꼭 '성공적인 독서'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 10년 전 쯤 일이다. 우연히 한 신문 칼럼에서 안소니 퀸의 자서전 '원 맨 탱고' 이야길 읽었다. 칼럼니스트는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고 밝혔다. 즉시 서점에 전화를 했고, 거의 절판 된 책을 어렵게 구했다.

그런데 그 책을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생각보다 두꺼웠고 지루했다. 안소니 퀸은 책꽂이에서 여전히 날 부르고 있다. 이처럼 추천 책 역시 다른 사람의 기호를 전부 만족시키진 못한다. <욕망하는 식물>은 성공한 편에 속한다.

<글쓰기 최소원칙>(룩스문디. 2008)엔 김광일(조선일보 문화부장)과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대담하는 부분이 있다. 김광일이 <욕망하는 식물> 이야길 꺼냈고, 최교수는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미국 유학 때 식물에 대해 알게 됐다. 그때까지 식물에 대해 너무 몰랐던 그는 우연히 동료 식물학 교수의 강의를 듣고 완전히 '식물에 발목이 잡혔다'. 최교수의 말.

"식물은 땅에다 뿌리를 박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존재인데, 이 식물이 그러다 보니 동물보다 훨씬 많은 고민을 하고 산다는 겁니다. 건너편 언덕에 보니 마음에 드는 암꽃이 있단 말이에요. 만약 동물이라면 그 암꽃한테 가서 치근거릴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식물은 뿌리를 뽑아서 갈수도 없어요. 해서 내가 어떻게 저 여인을 사로잡느냐를 생각해보니 중간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 후 최교수는 이 세상은 식물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최교수의 이야길 읽자, 식물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다. 안도연 시인의 '연탄재'가 생각났다. 진지하게,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것은 연탄재만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욕망하는 식물>은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와 닮았다. 둘 중 하나는 다른 하나에게 영향을 미쳤지 않나 싶었다. 이 추측은 맞았다. 저자인 마이클 폴락은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얻은 정보를 책에 소개하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가 인간을 자기복제 혹은 생존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일 뿐이다. 얼마나 쇼킹한 메시지였던가. 이 <욕망하는 식물>은 <이기적 유전자>의 식물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이기적 유전자> 식으로 말하면 '식물은 인간을 생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이다.

저자인 마이클 폴란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5월 어느 날. 정원에서 꿀벌이 윙윙거리는 사과나무 옆에서 씨감자를 심고 있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사람들은 자기가 정원에 뿌릴 씨앗을 선택하고 식물을 가꾸고 하는 것에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식물 입장에서 보면 그 일을 하고 있는 인간이나 또 자신의 꽃가루를 옮겨주는 꿀벌이나 그 역할이 다를 바가 무엇인가였다. 식물의 입장에선 개체 유전자를 퍼뜨려 준다는 의미에서 꿀벌이나 인간이나 똑같지 않을까란 깨달음을 얻었다."

책의 원제는 'The Botany of Desire'다. 욕망의 식물학 혹은 욕망하는 식물로 번역됐다. 식물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원한다는 뜻이다. 책 표지의 '세상을 보는 식물의 시선'이라는 말이 그 의미를 뒷받침해준다.

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네 가지의 기본적인 욕망인 달콤함, 아름다움과 도취, 지배력을 사과와 튤립, 대마초와 감자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그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보였다.

인류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식물들은 치열하게 진화를 거듭해왔다. 예컨대 과실수는 달콤함을 인간에게 선사했고, 인간은 달콤함을 즐기는 대신 과일의 씨를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 영역을 확장했다. 또한 인간이 식물들에게서 욕망을 충족시켰듯, 식물 역시 우리를 통해 생존과 번성의 이익을 취했다. 사과는 100년 전만 해도 수천 종에 이르렀다.

책에는 식물이 생존하기 위해 인간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왔는가가 잘 나타나있다.

"꽃의 관점에서 보면 이 정원에는 인간의 욕망이 잔뜩 묻어나 있다. 실제로 정원의 숱한 꽃들은 모두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화려한 모습으로 진화했다."-p138

"장미나 튤립과 같은 종류의 꽃들은 인간의 괴팍한 취향을 기꺼이 받아들여 자기 자신을 바꾸었다." -p146

<욕망하는 식물>을 읽고 나니 또 다른 책이 연상됐다.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이다. 이 책은 '지구상에서 인류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엉뚱한 상상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지구상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을 더 분명하게 보게 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하고 있다.

이런 류의 교훈은 아무리 떠들어도 평상시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인간 없는 세상>이 준 가장 큰 기여는 바로 가슴에 와 닿게 했다는 점이다. <욕망하는 식물> 역시 그랬다. 식물은 묻고 있다.'너희가 식물을 아느냐'고. [김지우기자 dobe0001@naver.com]

*후기 : 이 책은 이틀에 걸쳐 읽었다. 갑자기 책을 많이 읽으니 멀미가 난 것 같다. 목에서 활자가 거꾸로 올라 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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