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365권-4] 김훈이 들려준 '글쓰기 고민' 큰 공감
[1년365권-4] 김훈이 들려준 '글쓰기 고민' 큰 공감
  • 김지우
  • 승인 2009.01.0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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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다는 것은 동어반복의 지옥 벗어나는 일"

 

[북데일리] 요즘 글쓰기 책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다. 책을 낸 저자들에게, 본인 스스로 글쓰기에 대해 자신 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고, 첨삭지도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글에 대해 겸손하지 않은 이들의 글쓰기 책은 보는 이들을 민망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의 최소원칙>(룩스문디.2008)은 매우 겸손하다. 최소란 말은 이것만은 지켜줘야 한다는 의미인데 책엔 최고원칙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 많은 까닭이다.

책은 보통 글쓰기 책과는 다른 '형식'을 띄고 있다. 그 때문에 좀 뜻밖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에 대한 대담과 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알고 보니 한 대학권의 특별 강좌로 진행했던 과정을 정리해 펴낸 것이다. 형식이야 어쨌든 내용만 알차면 될 터. 책은 다음과 같은 목적을 띄고 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글쓰기의 현실적 필요 속에서 방향과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문학평론가(도정일)부터 작가(김훈, 김영하, 이문재), 그리고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박원순, 최재천 등)들로부터 글쓰기 방법을 물었으며 책은 그 결과물이다.

도정일(문학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과 김수이(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의 대담이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다. 도정일 교수는 논술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로부터 글쓰기 이야길 풀어갔다. 다양한 글쓰기를 경험한 뒤, 고교 2학년2학기나 3학년1학기부터 논술에 돌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논술은 글쓰기의 한 갈레일 뿐, 처음부터 논술을 '주입'하면 글쓰기가 지옥이 된다는 것이다.

작문 교육의 문제점에서도 일침을 날렸다. 우리는 학교에서 <'푸른 하늘'에 대해 써라>라는 식으로 배웠다. 그러나 이것은 글감을 제한시킨다. 대체 푸른 하늘에 대해 뭘 쓰지? 하며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도정일 교수는 글을 삶에 연결시키고, 경험에 접속시키라고 말한다. 그러면 엄청나게 많은 글감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또한 '언어의 마술'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도 교수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마술을 학생들이 체험하게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이렇다.

'히틀러가 오늘 아침9시에 죽었다'와 '오늘 아침 독일의 심장이 멎었다' 혹은 '오늘 아침 독일의 암이 사라졌다'는 표현 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와 '효과'가 있다.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해줘야 언어, 글쓰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훈은 소설 <칼의 노래>의 처음에 나오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문장을 예로 들며 글쓰기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그는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를 두고 이틀을 머리 썩혔다. 김훈은 책을 통해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의 차이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더 인상적인 대목은 '동어반복의 지옥'이라는 토픽이다. 김훈은 '글을 쓴다는 것은 동어반복의 지옥을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한다. 말하자면 이렇다.

[사전에서 '노랗다'라는 단어를 찾아보자. '개나리꽃 빛이다'라고 나와있다. '개나리꽃 빛'을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새로 나온 사전엔 '빛이 프리즘을 통과할 때 전개되는 일곱 개 스펙트럼 중에서 세 번째 층위이다'라고 쓴다]

김훈은 "이것은 '노랗다'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동어를 반복한 것일 뿐이라는 것. 아마 독자들은 사전을 찾다가, 요새 같으면 네이버에 단어 검색을 하다가, 비슷한 경우를 겪으며 난감해 하는 상황을 종종 겪었을 것이다.

동어반복이 아닌, 자신만의 언어로 사물을 표현해내야 하는 작가의 고통이 잘 나타난 대목이다. 김훈은 "프루스트가 소설에서 시간을 언어로 포착하기 위해서 얼마나 필사적인 노력을 했는지 읽어봤다"고 고백했다.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가 외국에서 받은 혹독한 글쓰기 수업 장면 역시 매우 재미있었다. 최 교수가 미국에서 '테크니컬 라이팅' 과목을 들을 때 일이다. 담당 교수는 제자(최재천 교수)를 독특한 방법을 통해 가르쳤다.최 교수는 결국 나중에 담당 교수로부터 '정확성과 경제성과 우아함을 갖춘 글을 쓴다'는 호평을 얻었다. 그 방법은 책에서 확인할 일이다.

책의 마지막은 소설가 김영하가 장식했다. 김영하는 "글쓰기가 즐거운 이유는 글쓰기가 우리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라며 "조수간만처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삶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글쓰기에서 비판은 금물"이라며 학생의 장점을 하나라도 들어서 이야기해주고, '넌 참 어떻게 이런 재미있는 표현을 생각해냈니'라고 격려하는 게 필요하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이 책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대담과 강의라는 두개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대담 부분은 유익하고 재미있었으나, 강의 부분은 좀 지루했다. 다만, 글쓰기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독자는 '대담' 부분만으로도 책값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 책을 서울에서 울산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다 읽었다. 대략 3시간 정도 소요됐다. 시작은 고속버스 터미널을 가는 택시 안에서였다. 택시기사가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딴 생각을 하는 바람에 반포로 들어가지 못했다. 덕분에 택시 안에서 읽는 분량이 약간 늘었다. [김지우기자dobe0001@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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