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빛을 쫓는 여행자, 사진작가 전소연
[인터뷰]빛을 쫓는 여행자, 사진작가 전소연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2.30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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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야기가 떠올려지는 사진 찍고 싶어요"

[북데일리] 사진작가 ‘티양’은 소녀다. 그녀 나이 올해 서른. 소(少)자를 붙이기엔 조금 민망한 숫자다. 하지만 그녀의 글과 사진은 영락없다. 종종 걸음으로 사진과 글 사이를 수줍게 오간다. 천생 여자, 더 깊게는 소녀. 포토에세이 <가만히 거닐다>(문학동네. 2008)에서 보여준 그 여자(女)의 감성이다.

<가만히 거닐다>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일본 간사이 지역의 교토, 오사카, 고베를 둘러보고 썼다. 온라인에서 티양으로 더 잘 알려진 사진작가 전소연의 ‘온전한’ 첫 책이다.

‘온전한‘이라는 수식어를 쓴 이유는 그녀의 사진이 이미 독자와 통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 김경주의 산문집 <패스포트>에서 고비와 시베리아의 아릿한 풍경을 담은 이가 바로 전소연이다. 시차적응, 빛의 유목, Passport Project No.1, 앨리스 증후군 등 크고 작은 사진전도 벌써 여러 번 열었다. ’신인 아닌 신인‘인 셈.

<가만히 거닐다>의 출간을 목전에 둔 28일 그녀의 작업실을 찾았다. 검은 가죽 재킷에 단단해 보이는 필름 카메라를 멘 모습은 책과는 또 달랐다. 화제는 단연 사진과 여행이었다.

“사진과 여행의 시작이 거의 비슷했어요. 7년 전 처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로모’ 카메라를 샀어요. 러시아 본드 특유의 냄새에 취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후에 계속 장비를 늘려갔죠. 그 무렵부터 여행도 다녔어요.”

지난 7년간 그녀에게 사진과 여행은 일상이었다. 전 씨의 전공은 사진이 아니다. 클럽 활동조차 해본 적이 없다. 사진은 그저 취미로 시작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낯선 풍경, 시간이 지나면 못 볼 찰나의 순간을 담는 데 바빴다.

동시에 “낯선 곳에 던져진다는 설렘”에 중독 돼 부지런히 이국땅을 밟았다. “낯선 지역의 아침을 맞으면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을 맛보려 기꺼이 이방인이 됐다. 베트남, 중국, 태국, 캄보디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몽골, 러시아, 일본, 그리스 등 타지의 구석구석에 렌즈를 들이댔다.

열망은 불현듯 찾아 왔다. 자신의 시선을 표현하고,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커지면서 그녀만의 이야기를 사진에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빛을 쫓아다니는 여행자가 됐다. <가만히 거닐다>는 그간 작가가 쌓은 욕망의 발현이다.

“처음에 사진은 여행의 기록이고 증명이었어요. 남들과 다르지 않았어요. 지금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사람들이 내 사진을 봤을 때 피사체의 사연을 끄집어내거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 보는 순간 생각이 열리는 사진이요.”

그래서 택한 방법 중 하나가 여백이다. “비워두는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그녀의 사진은 가볍다. 아니, 홀가분하다. 무겁거나 빽빽한 느낌은 없다. 조용하고 단아하며 때로는 쓸쓸하다. 사진 속의 대상은 사붓거리며 말을 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수줍어하는 소녀의 연애 방식이다.

“제목처럼 가만히 거니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그런 느낌을 자극적인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잖아요.”

<가만히 거닐다>에서 사진은 밥이고, 글은 반찬이다. 만족할만한 식사를 하려면 밥과 반찬이 두루 좋아야 하는 건 당연지사. “사진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사진보다 힘이 덜 실린 글은 싫다”는 그녀는 “역량이 되는 한에서 최대한 힘을 기울여 썼다”고 말했다.

책에서 작가는 소녀의 필체로 조근조근 수다를 떤다. 마냥 유치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눅진하지도 않은 문장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까지 나는 당신을 지켜볼 것이고 가끔씩 미소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당신과 나와의 거리는 가까워지거나 혹은 멀어질 것이다.-중략- 그러니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 사랑이든 사진이든 타이밍의 문제다.”(p167)

그녀의 다음 여행지는 아직 미정이다. 빛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순간을 지닌 곳이라면 어느 곳이 건 관계없다. 그 전까지는 기다릴 참이다. 작가의 사진전 ‘그녀, 가방에 들어간다’가 열리는 곳, 홍대 근처의 작은 카페 'Hibi'에서다.

동글동글한 눈으로 당신을 맞는 이가 있다면, 그녀가 바로 전소연이다. ‘가만히’ 다가가 말을 걸자. 그때는 소녀의 언어가 좋겠다. 조금은 수줍어할 줄 아는 그런 언어.

(사진제공=추리닝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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