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전태일 어머니'껴안고 울었다②
[인터뷰]'전태일 어머니'껴안고 울었다②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2.22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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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 10권 분량 구술 받아써...가치 있게 쓰이길"

<이소선의 말을 토씨 하나 안틀리고 그대로 기록했다>
[북데일리]작업실로 돌아가 천장을 보고 누워 있던 작가에게 이소선이 다가왔다.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코흘리개 시절, 오빠와 사별하며 부른 노래였다.

“세상은 넓다 해도/ 남매는 단둘이다/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 다짐했던/ 남매가 아니냐// 세월은 가고/ 오빠도 가고/ 나만 혼자 울고 있네// 넓고 넓은/ 하늘아래/ 나만 혼자 울고 있네”

다음 날 이소선은 다른 사람에게 읽혀보자고 제안했다. 장기표 새정치연대 대표와 그녀의 가족들이 읽고, 무리 없지 않느냐고 답했다. 그렇게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주변의 도움 없이는 못했을 일

책을 완성하기까지 애써준 사람들이 있다. 먼저 최두진 노동문화예술단 ‘일터‘ 음악감독. 최 씨는 180시간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녹취 자료를 글로 옮겼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적는 작업이었는데, 이는 쉽지 않았다.

이소선의 목소리는 탁하다. 안으로 감겨 들어가 우물거린다. 경상도 사투리에 전라도와 충청도가 섞여 있다. 1시간 녹음 분량을 그대로 옮기려면 4~6시간 정도가 걸린다. 처음에는 녹취 전문가들에게 맡겼는데, 1시간짜리를 작업하려면 10시간이 걸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최 감독은 이를 거의 무료로 해줬다. 처음엔 돈이 생기는 데로 수고비도 건넸지만, 나중엔 수입이 없다보니 이마져도 못했다.

“그 친구 없으면 못 썼을 책이에요. 하루에 4시간 정도 녹음했는데, 이걸 풀려면 20시간이 걸려요. 그걸 거의 공짜로 해줬으니 너무 감사하죠.”

소설가 홍명진은 교정을 도와줬다. 다시 계약을 하면서 출간 날짜에 맞추려 매일 새벽 2시까지 함께 일했다. 작가가 쓰면 곧바로 홍 씨에게 넘기고, 홍 씨는 이를 본 후 밑줄을 긋고 바꾸라고 요구했다.

아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부산에 아이와 함께 있는 아내는 남편의 ‘대책 없는’ 2년간의 작업을 묵묵히 응원하며 주말부부로 살았다.

<구술자료, XXX는 끝내 못 알아들은 부분이다>
소설책 10권 분량의 구술자료, 가치 있는 데 쓰였으면

이소선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아직 다 정리가 안됐다. 녹취 내용을 전부 글로 바꾸면 소설책 20권 정도의 분량이다. 중복된 내용을 빼도 10권은 나온다. 그녀가 보고 듣고, 격은 이야기는 모두 현대사의 핵심적 사건과 맞닿아 있다. 구술록으로만 만들어놔도 역사적 가치가 충분한 셈. 특히 노동운동 관계자들에겐 소중한 자료가 될 터다.

이에 대해 작가는 고민 중이다. 이번 책에서 목표한 바와 맞지 않아 뺀 내용을 개정판이건 새로운 책이건 살려내고 싶어 한다. 꼭 자신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오히려 자신이 못하는 부분을 사회학자나 역사학자가 맡아 해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내 개인 자료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공개해서 다른 분들이 노동운동사, 민주화운동사, 심리학적 관점에서 작업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2년간 아파 지냈다. 이소선의 고단했던 삶을 듣는 것도, 응어리를 풀지 않고 안으로 눅이며 사는 그녀를 보는 것도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를 아끼고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이로 발전했다. 때로는 역정을 내며 싸우고, 울고, 안았다. 그는 “돌이켜보면 애인 같았던 사이”라며 “이제 방 빼고 내려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날카롭고 치열하게 살아온 분입니다. 힘들고 외로웠을 때도 많았고요. 그래도 어느 한 분 적을 만들지 않고 사셨어요. 노동자의 어머니는 말, 예사로이 부르는 게 아니에요. 바람이 있다면 어머니가 앞으로는 하고 싶은 말도 하고, 마음 속 화도 한 번씩 푸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후 작가의 안내해 준 약도를 들고 이소선을 찾아 갔다.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10분 거리인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실 ‘한울삶’에 그녀가 있었다. 얼굴만 보고 나올 요량이었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말에 손 사레를 치며 인사만 건네고 나왔다. 끙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선 이소선은 문 밖까지 배웅을 나왔다.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사진=김대욱 기자,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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