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되도록 짭짤하게 울다 `시인의 눈물`
소금 되도록 짭짤하게 울다 `시인의 눈물`
  • 북데일리
  • 승인 2005.11.21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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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바람이 차다. 검은 옷을 입은 이, 윤동주 시집을 끼고 수서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여섯 해 전 홀연 전라선을 타고 선암사에 들었던 정호승 시인이다. 수도승이 된 줄 알았던 그는 수사가 되었나보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2004)에 하고 싶은 얘기, 참 많았으리라.

“혹한이 몰아닥친 겨울 아침에 보았다/무심코 추어탕집 앞을 지나가다가/출입문 앞에 내어놓은 고무함지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미꾸라지들/결빙이 되는 순간까지 온몸으로/시를 쓰고 죽은 모습을” (‘시인’)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시인의 몸이 검은 만년필처럼 곧다. 슬픔의 잉크는 이제 말라서 함부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낡은 재건축 아파트 철거작업이 끝나자/마지막으로 나무들이 철거되기 시작한다/아직 봄은 오지 않았는데/뿌리를 꼭 껴안고 있던 흙을 새끼줄로 동여메고/하늘을 우러러보던 나뭇가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이삿짐 트럭에 실려가는 힘없는 나무 뒤를/까치들이 따라간다/울지도 않고/아슬아슬 아직 까치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무 뒤를/울지도 않고”(‘이사’)

슬픔의 바닥까지 다녀 온 사람은 삶의 깊이를 안다. 소로는 “한 인간의 깊이와 숨겨진 바닥을 알려면, 그의 물가가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졌는지 알면 된다”고 하였으니, 그 슬픔의 물기를 가늠해 본다.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더이상 바닥은 없다고/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바닥에 대하여’)

차디찬 바닥에서 일어나는 시인의 눈에 회한의 눈물이 검게 번진다. 고해성사의 시간이 길다.

“나의 눈물에는 왜 독이 들어 있는가/....../왜 나의 눈물에는 푸른 독이 들어 있는가/....../사랑이여/나는 이제 나의 눈물에 독이 없기를 바란다/더이상 나의 눈물이/당신의 눈물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살아간다는 것은 독을 버리는 일/....../버리고 나서 또 버리는 일/눈물을 흘리며/해독의 시간을 맞이하는 일”(‘사랑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동안 시인은 한 마리 도요새가 되어, 첫눈처럼 시인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머리 위를 선회한다. 그의 눈물에 서운함마저 묻어있다.

“옥구염전에 눈 내린다/....../나는 일제히 편대비행을 하며/허공 높이 무수히 발자국을 찍어대다가/외로이 소금밭에 앉아 울고 있다/이제는 아무도 내 눈물로 소금을 만들지 않는다/....../일제히 염전으로 날아오르던 나의 사랑은/언제 다시 소금으로 빛날 것인가/....../옥구염전에 눈은 그치지 않는데/나는 몇 마리 장다리물떼새와 함께/외로운 소금밭을 서성거린다/나의 발자국이 소금이 될 때까지/나의 눈물이 소금이 될 때까지”(‘도요새’)

그러나 서운함은 잠시 뿐, 시인은 “무관심한 사랑에게 기다림의 형벌을 주겠다”던 오랜 마음의 벽을 허물고 만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물 한잔에 빵 한조각을 먹을 뿐이다/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벽’)

시린 지하도 바닥의 노숙자, 정든 집에서 ?i겨난 가족, 눈물의 국화빵을 굽던 가장들 모두 시인이 나눠주는 따뜻한 빵 한 조각씩 입에 문다. 그리고 다시 무릎을 꿇는 시인.

“차디찬 바닥에/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무릎을 꿇고/먼 산을 바라볼 때가 길 떠날 때이다/낙타도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먼저 무릎을 꿇고 사막을 바라본다/낙타도 사막의 길을 가다가/밤이 깊으면/먼저 무릎을 꿇고/찬란한 별들을 바라본다” (‘무릎’)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작은 무릎 위에 얹은 주먹이 펴질 때, 환한 연꽃 피어나리라. 결빙된 미꾸리도 오랜 해독의 시간을 보내고, 스스로 제 몸을 삭여 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 내어놓으리라. 곰삭아서 시큰한 산초향 같은 슬픔이 묻어나는...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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